애꿎은 잔디를 걷어차던 이동국처럼

나는 번역서를 싫어한다. 지금까지 접한 번역서 중 많은 수가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러니 당연히 재미도 없었다. 억지로 번역한 전문 용어도 싫었고, 생소한 묘사 방식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근의 공식’을 억지로 외우게 했던 수학 선생님처럼, 책을 통해 만난 번역사는 대부분 불친절했다. 하지만 “부자들의 음모”를 통해 만난 번역가 윤영삼은 친절했다. 먹이를 씹어 새끼 새에게 먹여주는 어미새 같았다. 배울 점이 있다 싶어 주저 없이 지원했고, 예상대로 많은 걸 배웠다.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바로 ‘번역은 어렵다’는 것이다. 골대 앞에서 홈런볼 차는 이동국에게 욕만 하던 축구 팬이, 발야구 시합에서 데굴데굴 굴러온 공에 연신 헛발질 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티끌’이고 눈 앞에 ‘거대한 산’이 놓여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으니 그 또한 소득이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가 시킨대로 내 자신을 알게됐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이번 수업은 꿈만 있고 갈피를 못잡던 나에게 나침반같았다. 분명히 어색하게 번역을 했는데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지 모를 때, 방향을 다시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많은 배움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네 가지만 골라 보았다. (워낙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 정리를 안 해둔 탓도 있다.)

우선 ‘어순의 중요함’이다.  사실 통역사는 앞에서부터 빠르게 번역하는 훈련을 많이 한다. 인내심 없는 고객’님’들 때문이기도 하고, 기억력이 짧아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번역의 경우 ‘뒤에서부터’ 번역하는 습관이 들어 있었다. 이 버릇을 고친 것만 해도, 아니 이런 번역 습관이 나쁜 버릇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해도 굉장히 큰 수확이다. 영어 공부 20년 만에 ‘성문 종합 영어’식 번역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된 것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다음으로 ‘논리’ 혹은 ‘맥락’의 중요성을 배웠다. 많은 번역문이(내 것을 포함해) 어색하게 보이는 이유가 아마도 이 맥락을 무시한 채 영어 단어나 문장을 번역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간단한 예로 “I love you” 에서 ‘love’ 는 사랑이겠지만, “I love this” 에서 ‘love’는 ‘마음에 든다’로 번역할 수 있다.

물론 영어문장들이 이렇게 간단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나? 우리 몸에 어느 하나도 쓸모 없는 것이 없듯, 텍스트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생명체도 모든 문단, 문장, 단어, 심지어 마침표 하나까지도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사소한 기호의 의미까지 씹어서, 게으른 독자들의 까탈스러운 입맛에 맞는 번역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번역가는 세심하면서도 자상해야 한다. 피곤한 직업이다.

다음으로 독해의 중요성이다. 많은 사람이 만점에 가까운 토익 독해 점수를 거들먹거리며 ‘독해는 좀 된다’고 말한다. 20년 간 영어 공부를 했고, 영어로 밥벌이를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 몇 안되는 ‘남자’ 통역사로서(여자는 많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댁은 지금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사실 이 수업을 듣기 전 나 또한 이런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과제를 하고 동료와 첨삭을 주고받으며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나를 보며,  ‘영어 원서나 신문을 대충 읽는 것과 번역을 위해 잘근잘근 씹어가며 해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오독(誤讀)은 곧바로 오역(誤譯)으로 이어진다. 많은 수의 어색한 번역문이 바로 이 오독에서 비롯한다.

마지막으로 한글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게 한국어 강박이 있었고, 이런 고집은 번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느꼈다. 이 수업을 듣기 전까지 어려운 전문 용어를 어려운 한자어로 번역한 경우나, 소설 속 표현들을 많이 보지 못한 한국어로 바꿔놓은 번역문을 극도로 싫어했다. 홈런볼을 차고 애꿎은 잔디를 걷어차던 이동국만큼이나. 하지만 이번 과정을 통해 번역이 한 언어의 표현력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음을 배웠다. 특히 문학에서 감정, 상황, 장면을 묘사하는 경우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주는 것도 가치있는 번역이 될 수 있다.

나는 아직도 어렵고 지겨운 번역서를 싫어한다. 왼손에는 수학책과 오른손에는 매를 들고 공식 암기를 강요하던 수학 선생님만큼이나 싫다. 하지만 쉽고 재미있는 번역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게 되었다. 위에서 말한 점들을 배웠다고 해서 바로 모든 문장을 씹어, 먹기 좋게 뱉어내지도 못한다. 대신에 길을 잘못 들었을 때 펴볼 지도(아직 빈 부분이 많다)와 방향을 가리켜 줄 나침반(간혹 오작동하기도 한다)을 얻은 느낌이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숲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입구에 서서 숲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가시 덤불에 긁혀 피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번역한 책을 쉽고 재미있게 읽고 있는 독자를 볼 수만 있다면, 그 정도 아픔쯤은 후시딘과 대일밴드로 극복할 각오가 되어있다.

By | 2015-12-11T15:12:48+00:00 2013년 8월 9일|Categories: 번역캠프, 수강후기|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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