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을 하는 기술과 번역가의 자질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번역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흔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이중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또, 외국어를 배울 때 우리는 수많은 “해석”을 하는데, 그런 해석은 번역이라 할 수 없는가?

구글에서 “번역”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2,100만개 이상의 검색결과가 나온다. 검색결과는 구글번역과 같은 기계번역서비스, 번역을 대행해주는 에이전시들, 번역자격증과 같이 번역을 가르치는 교육기관들, 우리말로 번역된 컨텐츠라는 것을 알리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어쨌든 이런 것만 보면 번역은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번역飜譯이란 말의 한자의 의미는 ‘뒤집어 풀이하다’라는 뜻이다. 반면 번역을 의미하는 영어 translation은 라틴어 translatio에서 온 말인데 이는 ‘전달하다’, ‘보내주다’라는 뜻이다. 이 두 가지 어원의 의미를 결합하면 ‘어떤 말을 풀어서 전달하는 것’이 곧 번역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일상적인 행위들도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 외국에서 온 친구를 다른 친구에게 소개하기 위해 중간에서 서로 대화내용을 통역해준다.
  •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가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겨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달받고, 그 사실을 함께 만나기로 했던 다른 친구에게 전달한다.
  •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집에 와서 설명해준다.
  •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을 5살 딸에게 이야기해준다.
  • 극장에서 본 
    [아바타]의 내용을 동생에게 실감나게 이야기해준다.

또 혼자 책을 읽는 것도 번역을 하는 것이다. 예컨대 ‘유기체는 점점 빠른 속도로,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을 수행하는 신경계라고 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냈다.’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 여기서 ‘유기체’란 어떤 대상을 지칭하는 것일까?
  • ‘점점 빠른 속도로’는 어떤 시간적 흐름을 묘사하고자 한 것일까?
  •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지칭하기 위해 선택한 어휘일까?
  • ‘신경계’를 왜 ‘네트워크’라고 정의했을까?
  • ‘만들어냈다’는 유기체가 직접적이고 의도적인 행위를 통해 개발해냈다는 뜻일까? 아니면 변화(진화)의 결과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일까?

이 경우 우리는 책에 쓰인 말을 풀어서 ‘나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굳이 말이나 글이 개입되지 않더라도 우리 머릿속에서도 번역은 늘 이루어진다.

  • 저 사람의 공격적인 말투는 어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까?
  •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것은 어떤 시대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것일까?

이처럼 번역은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한 과정은 물론 우리 자신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늘 수행하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번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개념은 –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 바로 ‘전달’,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물론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배우는 것이다.물론 한국에서는 시험보기 위해 배운다

결국 번역의 진정한 핵심기능이자 존재이유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물론 이 작업에는 두 개의 언어가 개입되기 때문에 두 언어에 대한 지식이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번역가는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터”로서 자질이 충만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번역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막상 번역을 시켜보면 언어지식은 번역에서 매우 제한적인 역할만 한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좋은 커뮤니케이터가 되기 위해선 어떤 자질이 필요한resizedimage600503-Khaler가?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듣는 사람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표정과 몸짓을 눈여겨 봐야 한다. 아니 그 이전에, 듣는 사람이 흥미를 잃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에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전달한 이야기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이 모든 번역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다. 물론 출판번역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책 – 텍스트 -를 통해 일어나기 때문에 이 모든 신호들이 텍스트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또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와 효과를 텍스트에 어떻게 반영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여기서 언어적 지식은 가장 기초적인 능력에 불과하다.

By | 2017-02-15T13:23:38+00:00 2014년 7월 30일|Categories: 갈등하는 번역, 온라인 번역레슨|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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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번역가. 영국 버밍엄대학 대학원에서 번역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출판기획, 편집, 저술 등 활동을 하면서 40여 권의 책을 번역하였다. 출판번역가를 양성하기 위한 번역강좌를 하고 있으며, 기능주의 번역이론을 바탕으로 번역훈련방법을 설명하는 [갈등하는 번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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