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산들바람: 문화특수어휘

갈등하는 번역 온라인레슨 9

이 레슨은 [갈등하는 번역 Part 1. 단어수준의 번역문제들]에서 다루는 내용을 설명합니다.

말은 그 말을 쓰는 집단의 환경과 문화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구성됩니다. 따라서 도착언어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자연현상, 사물, 문화, 관습 등이 출발언어 속에 담겨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어휘항목들을 문화특수항목Cultural-specific items라고 합니다. 번역학자 피터 뉴마크Peter Newmark는 문화특수항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1988b: 95)

1. 생태환경적 문화

말은 대개 지역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언어에는 지리적 특성이 반영된다. 예컨대 미국 로키산맥 인근에서 자주 발생하는 “tornado”라는 말이 문장 속에 나왔을 때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또 다음 문장은 어떻게 옮겨야 할까?

Amaranta Ursula returned with the first angels of December, driven on a sailor’s breeze, leading her husband by a silk rope tied around his neck.

– Garcia Marquez, A Hundred Years of Solitude, 1972: 305

그 유명한 [백 년 동안의 고독]이다. 여기서 December는 12월이고 breeze는 산들바람이다. 겨울에 왠 산들바람일까?

잠깐, 마르께스는 콜롬비아, 즉 남미사람이기 때문에 여기서 12월은 여름이다. 따라서 출발언어독자들에게 ’12월의 산들바람’은 시원한 바람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열기까지 느껴지는 바람일 것이다. 우리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상황이다.

물론 번역자는 간단한 주석을 달거나 의미를 보충함으로써 그 느낌을 어느 정도까지는 전달할 수 있겠지만 북반구의 독자들은 ’12월과 더위’라는 낯선 의미의 쌍으로 인해 원문의 원래 의미를 고스란히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2. 물질적 문화

물질적인 문화범주에 들어가는 어휘들은 대개 사전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뉘앙스’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번역문에서 이러한 암시까지 살려내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힘든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 음식: 음식이름이 쏟아져 나오는 원문, 번역가에겐 정말 고역이다. 프랑스에서는 밥을 본격적으로 먹기 전에 간단하게 먹는 음식을 ‘hors-d’oeuvre’라고 하는데 이걸 뭐라고 옮겨야 할까? (물론 사전을 찾아보면 ‘전채前菜’라는 말이 나오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매우 생소한 풍습이다.)
  • 옷: ‘sari’ ‘kimono’ ‘sarong’ 등 특정 지역에만 존재하는 옷입기문화 또한 번역작업에 어려움을 더한다. 특히 옷을 통해 그 옷을 입은 사람의 계층적, 계급적 암시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떠한 의미보충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 집/지역단위: ‘terrace house’나 ‘cottage’는 영국에서 특정한 집의 유형을 말한다. 또한 계급적 뉘앙스가 짙게 배어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다른 연상을 떠올리게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city’ ‘town’ ‘village’ 역시 번역하기 까다로운 단어들이다.
  • 교통수단: 현대생활에 가장 밀접한 도구인 자동차관련 단어들 역시 대표적인 문화적인 어휘범주로 여겨진다. 미국에서는 차를 지칭하는 어휘만 26가지가 된다! (예컨대 pickup 같은 것은 부연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또한 ‘cyclo’ ‘rickshaw’처럼 문화적으로 독특한 교통수단들도 있다.

3. 사회적 문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제도와 문화 역시 출발언어와 도착언어가 매우 다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는 서양과 한국의 가족제도와 가족구성원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유럽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사촌과 낭만적인 사랑을 하는 이야기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낯설고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4. 행동습관

인사하는 방식은 문화마다 계층마다 관계마다 다채롭고 미묘하다. 한국의 경우에도 예전에는 절이나 반절이 보통 인사방식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악수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요즘에는 젊은 층 사이에서는 가볍게 껴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인사법으로 자리잡은 듯 하다. 하지만 입을 맞추는 것은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They kissed.’를 문자 그대로 ‘입을 맞췄다’라고 옮기는 것보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또는 ‘반갑게 포옹을 했다.’ 정도로 옮기는 것이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 것이다.

번역가들은 이러한 문화적으로 특수한 개념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문화특수항목에는 ‘등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등가개념non-equivalent concept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번역가는 나름의 전략을 일관성 있게 세워야 한다.

By |2017-02-15T13:23:37+00:002016년 3월 8일|Categories: 갈등하는 번역, 온라인 번역레슨|Tags: , |0 Comments

About the Author:

번역가. 영국 버밍엄대학 대학원에서 번역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출판기획, 편집, 저술 등 활동을 하면서 40여 권의 책을 번역하였다. 출판번역가를 양성하기 위한 번역강좌를 하고 있으며, 기능주의 번역이론을 바탕으로 번역훈련방법을 설명하는 [갈등하는 번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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