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이 주는 효과: 영어의 주제구조 변이

갈등하는 번역 온라인레슨 17

이 레슨은 [갈등하는 번역 19. 스타는 맨 마지막 무대에: 정보구조와 엔드포커스/ 20. 글쓰기는 대화하기: 대화의 원리에서 찾는 정보성]에서 다루는 내용을 설명합니다.

어떤 언어든 가장 일반적인 어순이 존재합니다. 또한 어떤 언어든 특별한 의미나 뉘앙스를 전달하고자 할 때 어순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우리는 주제구조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영어의 경우 S+V+…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것은 특별히 저자의 선택이 반영된 문형이라 보기는 힘듭니다. 이러한 선택을 무표적unmarked 선택이라고 하죠. 반면에 이러한 문형을 변형하여 (=특정 항목의 위치를 바꾸어) 특별한 효과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선택을 유표적marked 선택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언어마다 어순이 다르고 문법이 다르기 때문에 무표적 주제구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말을 할 때는, 억양을 조절하여 의미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어순을 조절할 필요성이 크지 않지만, 글을 쓸 때는 억양을 표시할 수 없기 때문에 어순을 조절하여 유표적 주제구조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따라서 번역을 하는 사람은 출발언어뿐만 아니라 도착언어의 주제구조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는 영어의 주제구조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영어에서 기본어순을 변경하는 방법으로 다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이라이트 표시한 부분이 문장의 theme에 해당하고, 표시하지 않은 부분이 rheme(평언)에 해당합니다.)

전치주제 Fronted theme

기본 어순 S+V+O에서 뒤에 오는 항목을 주제어 자리로 옮기는 기법입니다.

시간, 장소부사의 전치
  • In China the book received a great deal of publicity.
목적어와 보어의 전치
  • A great deal of publicity the book received in China.
  • Well publicized the book was.
술어의 전치
  • They promised to publicize the book in China, and publicize it they did.

술부주제 Predicated theme

학교문법에서 ‘It-that 가주어용법’이라고 배우는 어순입니다(It-cleft structure). 이 구조는 신정보를 주제어 자리로 끄집어낼 때 사용합니다.

  • It was the book that received a great deal of publicity in China.
  • It was a great deal of publicity that the book received in China.
  • It was in China that the book received a great deal of publicity.

일치주제 Identifying theme

이 구조는 구정보를 주제어 자리로 끄집어내, 평언 자리에 신정보만 두고자 할 때 사용합니다(What- pseudo-cleft structure)

  • What the book received in China was a great deal of publicity.
  • What was received by the book in China was a great deal of publicity.

지금까지 살펴본 구문들은 어순이 자유롭지 않은 영어에서 유표적인 문장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주제구조입니다. 그렇다면 흔히 어순이 자유롭다고 말하는 한국어의 무표적 어순은 무엇일까요?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기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어순에 ‘주제구조’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면, 한국어 역시 어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흔히 한국어는 어순이 자유롭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말을 어순이 달라져도 의미는 같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한국어는 어순을 조절하여 의미를 조율할 수 있는 폭이 영어에 비해 훨씬 크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히려 영어화자보다 한국어화자가 어순에 대한 고민을 더 깊이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말이라는 도구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어순에 매우 민감해야 합니다. 번역가, 저자, 편집자라면 당연히 어순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의 차이를 감지할 줄 알아야 하고, 가장 효과적인 어순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By | 2017-02-15T13:23:36+00:00 2016년 5월 9일|Categories: 갈등하는 번역, 온라인 번역레슨|0 Comments

About the Author:

번역가. 영국 버밍엄대학 대학원에서 번역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출판기획, 편집, 저술 등 활동을 하면서 40여 권의 책을 번역하였다. 출판번역가를 양성하기 위한 번역강좌를 하고 있으며, 기능주의 번역이론을 바탕으로 번역훈련방법을 설명하는 [갈등하는 번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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