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이야기할 내용은 말이야…: 주제구조

갈등하는 번역 온라인레슨 16

이 레슨은 [갈등하는 번역 19. 스타는 맨 마지막 무대에: 정보구조와 엔드포커스/ 20. 글쓰기는 대화하기: 대화의 원리에서 찾는 정보성]에서 다루는 내용을 설명합니다.

모든 절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서 [무엇]을 이야기한다.

체계기능문법에서는 여기서 앞에 나오는 [무엇]은  ‘주제 theme’이라고 부르고, 뒤에 나오는 [무엇]은 ‘평언 rheme’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문장의 주제구조(‘주제-평언’으로 구분되는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은 화자가 무엇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화제의 중심에 두는지 파악하는 일입니다. 주제구조가 좋지 않은 글은 독자들에게 뭔가 잘 읽히지 않는다는 인상을 줍니다.

한국어의 ‘~은/는’이 붙는 문장요소를 흔히 ‘주제어’라고 하는데, 이것은 정확히 말하면 주제어theme가 아닌 화제어topic입니다. 영어에는 화제어가 없습니다. 영어는 주어중심(subject-predicative) 언어라고 하며 언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는 화제중심(topic-comment) 언어라고 합니다.

예컨대, 제가 iPhone 3S를 구입했을 때 박스 속에 들어 있 던 공식매뉴얼의 첫 문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iPhone의 사용을 환영합니다. 이 빠른 시작 설명서로 iPhone을 설정하고 키 기능을 사용하는 방법에 관해 알아보십시오. 한번 전화하는 것 이외에도 www.apple.com/kr/iphone 사이트에서 iPhone에 관한 더 많은 기능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이 글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지만, 여전히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 위 문장들의 주제구조를 한 번 분석해보겠습니다.

한국어의 구조분석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리를 이해하는 데 영어예문보다 훨씬 효과적이라 판단하여 한국어 예문을 사용합니다.

Original Version

주제만 보면 이 문장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예측할 수 있나요? 이 분석에서 주제가 과연 ‘절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알려주는 항목’에 걸맞는지, 또 평언이 ‘발화의 목적에 걸맞는 항목’인지 평가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위 문장을 쓴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주제구조를 짤 것입니다.

Revised Version

자. 어떤가요? 훨씬 쉽게 읽히죠? 이것은 그저 막연한 느낌 때문이 아닙니다. 실제로 주제만 뽑아 비교해보면 원래 문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위 표를 보면 OV는 주제항목만으로 이후에 이어질 문장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RV는 주제항목만 봐도 앞으로 전개될 문장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쉽게 읽힌다는 뜻입니다.

주제구조가 제대로 설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고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모국어 환경에서는 말을 하든 글을 쓰든, OV같은 주제구조는 애초부터 나오기 어렵습니다. 사고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닌 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고 말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죠. 번역문에서만 이런 엉터리 문장이 자주 나오는 것은, 번역자 스스로 문장의 메시지를 새기지 않고 문법지식만 가지고 번역을 하기 때문입니다.

By | 2017-02-15T13:23:36+00:00 2016년 5월 3일|Categories: 갈등하는 번역, 온라인 번역레슨|0 Comments

About the Author:

번역가. 영국 버밍엄대학 대학원에서 번역학을 공부했다. 2003년부터 출판기획, 편집, 저술 등 활동을 하면서 40여 권의 책을 번역하였다. 출판번역가를 양성하기 위한 번역강좌를 하고 있으며, 기능주의 번역이론을 바탕으로 번역훈련방법을 설명하는 [갈등하는 번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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