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Alas, the Protestant Work Ethic Ruined a Good Thing

The work ethic is not a traditional value. Work hasn’t always been held in the high regard that it is today. Many of our ancestors, in fact, would have rejected the Protestant work ethic outright, considering what it signifies.

Indeed, some of the best-known ancient Greek philosophers thought that work was vulgar. Working, just for the sake of working, signified slavery and a lack of human dignity. Socrates felt that because manual laborers had no time for friendship or for serving the community, they made bad citizens and undesirable friends. The early Greeks and Romans relegated all activities done with the hands, done under orders, or done for wages to the lower-class citizens or to the slaves.

Other early Greek philosophers, such as Plato and Aristotle, cited total leisure as ultimate wealth; leisure was desirable as an end in itself so people could use it to think, learn, and develop themselves. Conversely, pursuing wealth, power, and status through work was considered a form of voluntary slavery that failed to enhance the human condition. Plato and Aristotle were critical of people who kept working after they had satisfied their basic needs. They concluded that these people were working and pursuing luxury and power in an attempt to cover up their fear of freedom.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람들은 오늘날 노동윤리가 전통적인 가치라고 믿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지금처럼 노동이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은 적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우리 선조들은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를 근본적으로 거부했다.

실제로 고대의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들은 노동을 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동, 더 나아가 노동을 위한 노동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노예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는 육체노동을 하면 우정을 쌓고 공동체에 이바지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시민으로서 자격이 없고 친구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몸으로 하는 일, 남의 명령을 따르는 일, 돈을 받고 하는 일은 하층민이나 노예들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평생 일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을 최고의 부자라고 생각했다. 여가 자체가 인생의 목표였으며, 그러한 여유시간에 생각하고 배우고 자기계발하는 것을 꿈꾸었다. 노동을 통해 부와 권력, 명성을 얻는 것은 상놈들이나 하는 비천한 짓으로 인간다운 삶을 저해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나서도 계속 일하는 삶을 비난했다. 지속적인 노동을 통해 사치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두려움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Sorce Text: Joy of Not Working by Ernie Zelinski

Target Text: [일하지 않아도 좋아] 김성순 옮김

원작과 번역된 작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읽어보세요.

By | 2017-03-08T12:03:26+00:00 2017년 3월 6일|Categories: Source vs Target, 일하지 않아도 좋아|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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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센도 웹사이트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토코투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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