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글 2017-03-23T10:36:44+00:00

미래의 삶, 아니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얼마 전 내가 이용하는 미국의 메일발송 서비스에서 한 통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이용규정을 위반하여 계정을 폐쇄한다는 내용이었다.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번역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이메일 뉴스레터를 보내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그 회사의 사이트를 방문하여 고객불만을 접수하는 이메일주소를 찾아냈다. 나의 억울한 사정을 구구절절 써서 보냈더니 5시간 만에 답장이 왔다. 그들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사용자들의 활동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데,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한 알고리즘에 따라 의심스러운 계정을 차단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학습해야 하는 인공지능 특성상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따라서 고객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자신들이인간이직접 내용을 검토하고 조치를 취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 계정은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고맙게도 ―다시 활성화시켜 주었다.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우리 삶의 많은 영역이 머지않아 이처럼 인공지능의 관리와 통제를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수많은 기업과 조직에서 운용하는 인공지능들이 이미 우리 삶의 세세한 측면을 깊이 파악하고 관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은 결국 커즈와일의 주장대로 인간의 마음까지 갖게 될지 모른다. 물론 그의 주장에 많은 이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그리 겁먹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얼마 전 IBM 왓슨을 탑재한 무인버스를 시험운행하는 뉴스 동영상을 보았는데, 버스가 탑승자를 알아보고 친근한 말투로 인사하고 목적지를 묻고 농담을 건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그 동영상 속 풍경은 왠지 낯설지 않았는데, 바로 우리 딸아이들이 즐겨 보는

[꼬마버스 타요]나 [로보카 폴리] 속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그런 삶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실제로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바로 정체성의 분화에 관한 내용이다. ‘내가 나인가 아닌가’ 하는 고민은 지금으로써는 상상하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커즈와일의 말 대로 인류가 ‘추상성을 높여나가는 진화’를 계속해나간다면 머지않아 이 문제는 우리가 직면할 공동의 화두가 될지도 모른다.

예전에 내가 번역한 기 도이처의 [그곳은 소, 와인, 바다가 모두 빨갛다]라는 책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색깔을 인지하는 것이 지금 우리 눈에는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일로 보이지만, 인류가 물체에서 ‘색깔’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분리해낸 것은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말하자면 2500년 전만 해도 우리 인간은 개나리꽃을 보면서 그 형태와 노랑이라는 색깔을 구분해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색깔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분리하여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염색이라는 ‘기술’의 등장이다. (그런 이유로 인류의 언어에 색깔어휘가 등장한 순서는 모두 같다: 흑백>빨강>초록> 노랑>파랑>갈색 또는 흑백>빨강>노랑> 초록>파랑>갈색)

이러한 인류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나라는 몸뚱이와 나라는 정체성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도 지금 매우 어려운 일처럼 여겨지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 만은 아니라 여겨진다. 물론 그러한 사고의 전환은 이 책의 생각실험에 등장하는 ‘스캔닝’기술이 현실화될 때  본격적으로 촉발될 것이다. 어쨌든 우리 인류는 염색 기술에서 마음을 스캐닝하는 기술까지 거침없이 내달려 온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또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문제들을 우리 앞에 던져줄 것이다. 하지만 더 편리하고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올드브레인이―존재하는 한 기술발전은 막을 수 없는 것이기에, 기술발전 자체를 거부하기 보다는 그 과정 속에서 바람직한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커즈와일의 급격한 기술발전 예측과 이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물론 상당한 믿음의 도약이 필요하겠지만―결국 우리 인류가 미래를 맞이하는 올바른 태도 아닐까 생각한다.

컴퓨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문서작업이나 웹서핑 정도가 전부였던 나에게 이 책을 번역하는 일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많은 자료를 찾고 공부했다. 그리고 나처럼 컴퓨터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번역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 속에 담긴 정보에 오류나 왜곡이 담기지 않도록 상당한 검토와 감수를 거쳤다. 이 책을 감수해주신 연세대학교 조성배 교수님은 물론, 카이스트 전산학부 박사과정에 있는 장경록님, 석사과정에 있는 서민관님과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박사과정에 있는 김현정님도 용어나 진술의 정합성 측면에서 조언을 주셨다.

또한 최종적인 원고검수과정에는 팀크레센도의 라성일, 이택근, 구윤정, 김상욱, 김경미, 유민진, 최나래님이 참여하여 원고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 주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앞으로 우리 인간과 깊은 인연을 맺고 살아가게 될 인공지능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또 그들의 모습에 비춰 우리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의미있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윤영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