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troducing Me to My Habitat
Jack Handy 임소연
환경보존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이번 기회에 내가 원래 살던 곳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를 압박해달라고 요구하고 싶다.
내가 원래 살던 곳은 남서부 사막으로, 그곳에서 나는 거칠 것 없이 자유롭게 떠돌곤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그곳에서 살지 못한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뉴욕 맨해튼 첼시지구에 있는 방 2칸짜리 아파트에 거의 틀어박혀 지내다시피 했다.
이웃들도 말하지만, 나는 여기 어울리는 존재가 아니다. 자동차 경적소리에 여전히 깜짝깜짝 놀랄 뿐만 아니라, 나에게 제공되는 예쁜 동양음식은 엔칠라다와 생강쿠키를 좋아하는 원래 내 식성과도 맞지 않는다. 비좁은 사무실 안에서 나도 모르게 멍하니 왔다 갔다 서성거릴 때가 있는데, 그건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명백한 징후라고 한다.
가끔씩 내가 원래 살던 곳인 산타페의 한 식당에서 젖은 짚단 묶는 끈을 아이에게 던지고 나서 모른 척 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실버시티에서는 사람들이 말릴 때까지 파티장에서 우스꽝스러운 카우보이 춤을 추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억이 진실인지조차 모르겠다.
사실상, 그전에 살던 리오그란데에서는 완전히 쫓겨났다. 나는 주로 엘파소, 남쪽으로는 후아레스에서 북쪽으로는 멀리 타오스까지 오가며 생활했다. (물론 타오스에서 되돌아가는 것을 깜박할 경우에는 그 너머 북쪽까지 가기도 했다.)
한때 나는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나는 주로 늙고 약한 사람만 공격하는데, 나를 고용했던 사람들은 늘 그런 사람들이었다. 불경기로 인해 그들의 사업은 모두 망했고, 자연의 섭리대로 그들은 생태계에서 사라졌다.
나의 세계는 늘 조화로웠다. 다만 늘 그렇듯이, 사람들이 끼어드는 것이 문제였다. 목장 주인들은 맥주파티를 하면서 바비큐 고기를 던져주며 나를 자신들의 땅에서 쫓아냈다. 물론 자신들이 키우던 소를 잡아 구운 고기였을 것이다.
이혼과 실직은 그들을 제정신이 아니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불행을 나에게 분풀이하는 사람들과 더 이상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어느덧, 나에 대한 대중적인 감정이 매우 나빠져 사람들은 나를 해로운 존재처럼 취급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제 예전처럼 나를 보기만 하면 무조건 총을 들이대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열심히 재교육한 덕분이겠지만, 오랫동안 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진실은 이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내가 사람을 공격했다는 기록은 지금까지 한번도 찾아볼 수 없다(물론 나보다 엄청 작은 경우는 예외일 수 있다). 오래된 신화들이 서서히 깨지고 있다. 예컨대 사람이 없는 야영장에 몰래 가서 냉장고에서 맥주나 음식을 꺼내 먹거나 텐트를 부순다는 것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 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며, 뉴욕의 집세는 언제라도 오를 수 있다. 또 주식시장에서 한 번에 휩쓸려갈 수도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포획번식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아내가 피임을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랬던 것 같다.)
이 모든 사실은 정부를 상대로 1등석 비행기를 태워 나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라고 청원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넉넉한 경비와 최신형 자동차만 주면 원래 있던 생태계의 틈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아내가 눈치채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최대한 많은 여자들과 짝짓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먹고, 무슨 TV 쇼를 보는지 일기를 쓸 것이다. 그러면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될지도 모른다.
필요하다면 무선송신기 목걸이도 찰 수 있다.
나는 이런 일을 기꺼이 할 것이다. 사람들이 사막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쉿, 들었어?”라고 말하며 나의 애처로운 울부짖음에 귀 기울일 때, 하나의 공동체로서 우리가 무엇을 잃고 살아왔는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원문 http://www.newyorker.com/magazine/1999/09/06/reintroducing-me-to-my-habitat
이 칼럼은 상상마당아카데미 “갈등하는 번역 입문반 3기”를 수료한 학생이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