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 책은 1991년 그리스의 유적지를 여행하던 중 떠오른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일행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운 좋게도 박식한 아테네대학 교수였다. 유적지를 돌 때마다, 그것이 원래 여신을 위해 바친 신전이었으나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알 수 없는 사람에 의해 남자신을 섬기는 신전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빠짐없이 그녀는 설명하였다.

이후 우리는 크레타섬으로 이동하여 깊은 인상을 주는 크노소스유적을 둘러보았다. 우아한 궁전의 벽화는 화사한 궁정의 여인들, 여자곡예사, 뱀을 든 여사제를 묘사하고 있었다. 청동기에 기반한 미노아문명에서 여자들이 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는 증거들이었다.

여행은 아르테미스신전 유적이 있는 터키 에페수스에서 끝이 났다. 아르테미스신전은 서양에서 여신을 숭배하기 위해 지은 가장 큰 신전이다. 4세기 말 기독교 정부가 들어서 신전을 폐쇄하기 전까지, 여자들(또 남자들)이 이곳에서 여신을 숭배했으며, 여사제들이 예배를 집전했다고 한다. 이러한 소개를 듣고 유적을 유심히 돌아보는 와중에 우리 가이드는 예수의 어머니 성모마리아가 에페수스에 와서 죽었다는 전설을 들려주면서, 마리아가 묻혔다고 전해내려오는 언덕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Temple of Artemis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왜 마리아가 ‘이교도’의 여신을 섬기는 곳까지 찾아와 삶을 마감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단순히 전설일 뿐이라고 해도, 왜 그런 전설이 이어져내려온 것일까? 이 질문은 마침내 여행을 하는 동안 내 머리 속에 맴돌던 좀더 포괄적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고대 서양의 여신들이 사라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오랜 선사시대는 물론 역사시대 초기에도 남자여자 모두 여신을 섬겼으며, 여자들이 주요한 종교의례를 집전했으며, 재산도 모계를 통해 상속했다는 것이 고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분명한 사실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어느 시점에 여신숭배를 부정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여자들이 종교적 의례를 수행하는 역할에서 완전히 배제된 이유는 무엇일까? 부계를 통해서만 재산을 상속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역사의 어떤 사건이 신의 성별을 바꾸어 놓은 것일까? 물론 이에 대한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다.

문자기록이 시작되기 전에, 북쪽에서 세차게 몰아쳐온 기마인들이 자신들이 하늘신관 남성적인 윤리를 강요하면서 기존의 평화로운 여신문화가 멸종했다.

하지만 어느 지역의 문명이든 이러한 현상은 똑같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변화가 1,000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일어났다는 점에서 납득할 수 없는 설명이었다.

또 하나, 이 여행을 했을 때는 나의 첫 책 《예술과 물리》를 출간한 직후였다. 이 책의 핵심주장은 예술의 혁신이 물리학의 주요발견을 예견한다는 것이다. 예술과 물리는 서로 다른 언어다. 예술은 이미지와 메타포를 사용하고, 물리학은 수와 방정식을 사용한다. 《예술과 물리》에서 제시한 개념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매체들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데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머릿속에서 이 모든 문제들이 뒤섞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여신과 여자들의 지위가 추락한 것과 무자비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가 출현한 것이 글을 읽고 쓰게 된 사건과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마도 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인간의 뇌에 어떤 구조적 변화가 발생한 것은 아닐까?

신경외과 의사로서 나는 어린아이의 뇌 발달과정에서 학습의 종류에 따라 활성화되는 신경통로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개인의 생리적 변화를 다수가 동시에 경험한다면, 예컨대 사회의 구성원 중 일정비율 이상이 문자, 특히 알파벳을 읽고 쓰는 능력을 습득한다면, 우뇌적 사고는 위축되고 좌뇌적 사고가 증폭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이런 가설을 바탕으로 이미지, 여자의 권리, 여신의 몰락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가설에 몰두할수록 머릿속에는 더 많은 의문점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발견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것이었고, 역사적으로 다른 시기의 사건들, 다른 문화의 사건들에도 적용이 되는지 하나씩 따져보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엄청난 집착으로 써내려간 결실이 바로 여러분들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이다.

내 직업은 외과의사다. 병원에서 과장이며, 의과대학에서 부교수 역할도 하고 있다. 혈관수술 전문의로서 나는, 뇌에 피를 공급하는 경동맥수술을 하면서 좌뇌와 우뇌가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이 특별한 경험은 내가 신경해부학적 가설에 기반하여 여신과 여사제가 서양에서 사라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의 가설은 많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요구할 것이다. 친숙한 것도 마음을 열고 새로운 각도에서 한 번 바라보기를 바란다. 진술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많은 전문가들에게 상당한 자문을 구했으며, 집단지성의 체로 걸러내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서 원고를 계속 수정하고 보완했다.

서양의 알파벳을 쓰지 않는 동양에서도 가부장제는 존재하기 때문에, 나의 문화적 템플릿이 유효한지 알아보기 위해 간략하게나마 그들의 역사도 언급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 결과 이 책은 장구한 세월과 다양한 신념체계를 모두 포괄하게 되었으며, 그래서 안타깝게도 몇몇 문화나 시대는 깊이 다룰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책의 목적은 인간이 처한 조건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면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타당한 추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온갖 드라마를 설명하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 것들까지 일일이 이 책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오로지 문자와 가부장제라는 두 축에 초점을 맞춰 서술해 나가고자 한다.

나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전문용어는 최대한 배제하고 누구나 쉽게 읽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아름다운 봄날, 책상 위에 놓여있는, 두꺼운 원고를 넘겨보면서, 나 스스로 몰입하여 빠져들었던 기나긴 작업이 이제서야 끝이 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글을 쓰는 과정은 매우 어렵고 복잡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흥미진진하고 훌륭한 경험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즐거운 경험이 되길 바란다.

레너드 쉴레인
1998년, 캘리포니아 밀밸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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