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증처럼 보이지만 논증이 아닌 것

Series Reading 논증의 탄생 6

어떤 진술이 논증이 되려면 다음 두 기준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 형식: 논증이 성립하기 위해선 주장(상대방의 이해나 행동을 요구하는 진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하나 이상의 이유(상대방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실이 되는 진술)가 존재해야 한다.
  • 목적: 타당한 이유를 제시할 ‘때에만’ 상대방이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설득하고자 할 때 논증은 성립한다.

설득을 목적으로 하지만 논증이 아닌 것

설득을 목적으로 하지만 형식을 갖추지 않은 경우.

협상 negotiation

가격을 놓고 서로 흥정을 할 때에도 주장과 이유를 서로 교환하기에 논증처럼 보인다. 하지만 협상에서는 쌍방이 수긍할 수 있는 결과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어떤 이유를 제시해도 상관없다. 자신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를 제시하기도 하고, 거짓근거를 대기도 한다.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을 숨긴다고 해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논증에서는 솔직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보를 숨겨서는 안 된다. 자신의 주장과 연관된 정보를 생략해서는 안 되며, 의심스러운 이유를 제시해서는 안 된다.

선전 propaganda

주장과 이유를 제시한다는 면에서 논증과 비슷하지만 그 이유의 타당성은 전혀 따지지 않는다. 상대방의 감정만 자극할 수 있다면 뭐든 가져다 쓴다. 타겟으로 삼은 사람들의 특정한 생각을 꺾을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상대방의 의견이나 관점을 받아들이는 것(반론수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정직한 논증은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고 다른 이들의 반론에 귀 기울이고 그에 대해 반박할 수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조차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강압 coercion

내 뜻을 거스르는 사람은 다음 공천은 못 받을 걸 각오하십시오!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통을 치러야 한다고 협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내 뜻을 순순히 받아들이 사람에게는 충분한 보상과 후과가 있을 것입니다!

채찍 뿐만 아니라 당근 역시 강압의 또다른 형태라 할 수 있다.

내가 25년 검찰생활을 해봐서 딱 보면 압니다. 내 말이 틀린 적 없습니까?

자신의 권위를 논증에 이용하는 것도 역시 강압이다.

온갖 핍박 속에서도 살아남은 제가 정권을 교체할 유일한 희망입니다.

상대방의 동정심을 자극하거나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고귀한 가치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압박하는 것 역시 강압이다. 상대방에게 창피를 줘서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도 강압이다.

물론 협상, 선전, 강압이 늘 비합리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늘 강압하고, 선전하고, 협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행동을 ‘양육’이라고 부른다. 또한 아이들을 인질로 잡은 테러리스트를 제압하기 위해 협박하거나 협상하는 것을 우리는 비합리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공정한 시민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상황에 따라 어떠한 대화형식이 가장 적합한지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논증처럼 보이지만 설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것

논증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설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경우.

설명 explanation

집에 가야겠어. 너무 피곤해서 실수를 해.

첫 문장은 주장이고 두 번째 문장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유처럼 보인다. 하지만 발화의 의도를 알기 전까지 우리는 이것이 논증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론: 갈거니? 시간이 됐는데. 몇 시간째 일을 했잖아.
타냐: 집에 가야겠어. 너무 피곤해서 실수를 해.

타냐는 론에게 자신이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론도 타냐가 집에 갈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설득이 아니라 ‘설명’이다. 다음 대화와 비교해 보라.

론: 집에 가면 안 돼! 네가 있어야 돼!
타냐: 집에 가야겠어. 너무 피곤해서 실수를 해.

타냐의 말은 위와 똑같지만, 여기서는자신의 주장을 론이 수긍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유을 덧붙임으로써 ‘설득’하고자 한다.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것은 설명이 아니라, 논증이다.

물론 복잡한 쟁점을 놓고 논증할 때는 설명과 논증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예컨대 제3세계에서 만든 티셔츠를 불매해야 한다는 캠페인을 하고 싶다면, 제3세계의 노동환경이 어떠한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할 것이다.

논증과 거리가 먼 것들

이야기 story

물론 소설이나 영화가 논증 못지않게 설득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야기에는 대부분 비판적 사고가 작동하지 않는다.

  • 이야기가 선사하는 공포나 기쁨은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며 매우 강렬한 효과를 유발하지만, 논증이 선사하는 지적 희열은 그만큼 강렬하지 않다.
  • 생생한 이야기는 직접 보고 듣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지만, 추상적인 논리로 전개해나가는 논증은 이야기만큼 생생한 감정을 전하지 못한다.
  • 이야기를 듣는 동안 우리는 최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보류한다.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을 보면서 “잠깐만, 저건 말도 안돼!”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라고 묻는다. 실제로 경험담을 들려줄 때 상대방이 이야기의 진위에 대해 의심하면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의심은 곧 이야기하는 사람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논증을 할 때에는 이유, 근거, 논리, 심지어 논증을 하는 필요성까지 모든 것을 독자가 의심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독자가 의심하고 질문하면 비판적 사고를 하는 화자는 오히려 고마워한다.

좋은 이야기가 곧 좋은 논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이야기만으로는 주장이나 이유를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통해 어떤 교훈을 전하고자 한다면 “분수에 넘치는 것은 욕심내지 말라”와 같은 분명한 메시지를 이야기 끝에 덧붙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문구를 첨가하지 않으면 독자는 자신이 읽은 이야기가 무슨 주장을 하려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솝우화의 교훈은… 이야기는 스스로 주장을 하지 못한다는 것.

이미지 image

이야기 혼자서 논증이 되지 못하듯이, 시각적 이미지 역시 혼자서 논증이 되지 못한다. 말을 최대한 빼낸다고 하더라도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유를 진술하는 말은 있어야 한다.

예컨대 굶주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런 이미지는 우리에게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며 울부짖는 듯 하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까? 평화봉사단에 가입하라고? 제3세계의 부채를 탕감하라고 의회에 청원을 하라고? 세계화를 멈추라고? 돈을 보내라고? 누구에게 보내라고? 글이나 말로 명시하지 않으면 이미지가 무엇을 해달라고 하는 것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맨 위: 와퍼 28일째(그림을 설명하는 캡션 역할을 한다: 근거). 아래 3줄: 인공보존료가 하나도 없는 아름다움(이유). 가운데 로고: 버거킹(건강한 햄버거: 사세요!-주장)

그림만으로는 아무런 메시지도 전하지 못한다. 이러한 문구가 없다면 광고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광고는 ‘반론을 뺀 논증, 즉 선전propaganda의 형태를 띤다는 것을 보여준다.

논증의 탄생
크리틱스초이스
스타일레슨

이 글은 《논증의 탄생》과 《스타일레슨》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Series Reading: 논증의 탄생

  1. 글을 쓰는 것이 어려운 이유
  2. 그리스 수사학의 전통
  3. 현대 수사학과 논증의 발전
  4. 고등학교와 대학 글쓰기의 차이
  5. 가짜 논증과 진짜 논증
  6. 논증처럼 보이지만 논증이 아닌 것
  7. 일상적인 대화에서 찾는 논증의 원리
  8. 글쓰기가 비판적 사고를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유
  9. 독자의 관심을 어떻게 끌 것인가?
  10. 독자가 귀 기울일 만한 매력적인 주장을 찾아라
  11. 가치있는 주장인지 판단해볼 수 있는 3가지 기준
  12.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13. 남들의 시선으로 내 생각을 바라보는 것이 어려운 2가지 이유
  14.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독단에 빠진다
  15.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따지는 가장 이성적인 방법
  16. 누구 책임인가? 누구의 공인가? : 논리적으로 따지는 5가지 기준
  17.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이유: 4가지
  18. 어휘선택: 독자를 통제하기 위한 교묘한 전략
  19. 정치인들이 활용하는 기본적인 선동기법 3가지

이 글은 2021년 11월 18일 [슬로우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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