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문 앞에서도 AP 기자를 만날까 봐 무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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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뉴스를 보다보면 AP라는 통신사가 작성한 기사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사 첫머리에 나오는 바이라인 BERLIN, March 26.—(AP)—는, 베를린에서 3월 26일 AP특파원이 작성한 기사라는 뜻이다.

The Associated Press는 국제뉴스 취재를 목표로 설립된 비영리 뉴스협동조합이다. 1846년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신문사들이, 멕시코전선의 소식, 그리고 유럽소식을 더 빠르게 전송받기 위해 자금을 모아서 설립한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 AP는 외국에 직접 나가 취재하기보다는 로이터Reuters와 같은 기존의 뉴스통신카르텔에서 뉴스를 받아서 기사를 작성했다.

AP의 위상 

20세기에 들어서 1-2차대전을 거치면서 유럽의 뉴스통신카르텔들이 경쟁적으로 세계 곳곳에 지국을 개설하기 시작했는데, AP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해외특파원을 파견하기 시작한다. AP는 머지않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196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전세계 뉴스를 수집하여 미국 매체에 배포하는 수준을 넘어서, 12개 언어로 기사를 번역하여 해외매체들에게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외신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AP 로고의 변화

AP특파원들의 뛰어난 취재력에 대한 명성은 해외특파원을 파견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자자했다. 1930년대 어느 날 밤 감옥에서 풀려난 마하트마 간디가, 감옥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AP기자를 보고선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국의 문 앞에서도 AP기자를 만날까봐 무섭군.”

Heinzerling, 2007, 266.

외신취재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는 AP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한다.

어떤 곳에서 갑작스럽게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그곳에 《뉴욕타임스》 특파원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AP특파원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누구나 기대한다.

Hamilton, 2009, 278.

오늘날 세계 최대 통신사로 성장한 AP의 네트워크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2013년 한 해 동안 AP가 생산해낸 기사는 하루 평균 2,000개에 달하고, 1년 동안 찍은 보도사진은 100만 장이 넘는다. AP의 기사를 받아서 보도하는 신문사와 방송사는 미국에서만 1,400개가 넘는다. 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 100여 개 나라의 무수한 언론사들이 AP의 기사를 제공받는다. 지금도 전세계 인구의 절반은 매일 AP보도를 통해 해외뉴스를 접하고 있다.

지금까지 퓰리처상을 받은 AP가 작성한 기사와 보도사진은 54개나 되며 이 중 30 여 개가 미국 밖에서 취재한 것이다. AP는 또한 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새로운 취재방식과 보도방식을 바꿔왔다. 처음에 사진과 텍스트기사 서비스로 출발한 AP는, 1941년 라디오 뉴스서비스, 1994년 비디오뉴스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8년부터는 모바일앱을 활용하여 뉴스를 직접 제공하고 있다.

‘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AP가 이처럼 전세계적인 존재감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은 특파원들의 무수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해병대정신’이라고 말하는 ‘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First in, last out.’라는 지침을 AP특파원들은 여전히 지키고 있다.1898년 스페인-미국전쟁부터 2014년 가자지구 무력충돌에 이르기까지, 총 33명의 특파원이 현장을 취재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특히 1993-4년 사이 1년 동안에만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2014년에도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야간총격전을 취재하던 중 영국출신 특파원 제임스 밀러James Miller가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사망하였다.

언론은 무엇 때문에 존립해야 하는가?

오늘날 소셜미디어를 통한 정보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이제 누구나 뉴스를 생산하고 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데이터의 특성으로 인해 ‘특종’이라는 개념도 희미해지고 있다. 언론사들은 떨어지는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클릭수’를 유도하기 위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는 결국 뉴스기사의 질의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가짜뉴스와 편파보도로 얼룩진 한국의 언론상황은 단순히 언론에 대한 신뢰도의 하락이라는 수준을 넘어서, ‘기레기’라는 대중의 공공연한 조롱이 일상화되어버린 비참한 현실로 추락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필요성과 존립가치까지 의심받고 있다.

이런 수난 속에서도 언론이 존립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라는 직업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의 역할을 당위적으로 설득하는 것만으로는 언론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앞으로 연재할 이 글에서는 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사의 현장을 누비며 취재하는 AP기자들의 다양한 경험담을 소개한다. 그들이 취재현장에서 느끼는 기쁨, 슬픔, 공포, 분노, 안타까움과 그럼에도 현장을 지키는 용기와 신념은 그 자체로 깊은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역사적 순간을 직접 취재한 AP특파원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경험담은 언론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기자정신이 무엇인지 본연의 정신을 일깨워줄 것이며, 우리 언론이 어떤 길로 나가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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