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령님, 내가 시신을 직접 세 보았습니다!

AP특파원들은 전투의 결과를 정확하고 진실되게 전달하기 위해 현장에 직접 들어가 시체를 하나씩 센다. 아마도 AP특파원이 수행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위험한 임무일 것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정보에는 왜곡이 많기 때문에 기자는 직접 현장에 가서 사실을 확인하고 기사의 신빙성을 높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경험은 상당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1980년 인구가 100만 명에 달하는 한국의 도시 광주에서 정부군이 무자비하게 반정부시위를 진압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에 맞서 도시를 장악했고, 계엄군은 도시외곽을 봉쇄한 다음, 도심으로 진격하여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Dying for Democracy, 1980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AP특파원 테리 앤더슨은 사진기자와 함께 광주로 갔다. 택시기사는 광주로 들어가는 길목을 10여 킬로미터 남겨두고 그들을 내려주었고, 걸어서 바리케이트를 넘었다. 기사를 송고하기 위해 전화기를 사용하러 매일 계엄군부대에 들어간 것을 빼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현장에 머물렀고, 그렇게 9일 동안 광주를 취재했다.

광주에 들어간 첫째 날,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너무나 큰 충격과 비통함 속에서 하루를 보냈어. AP가 뭐하는 곳인가? 가장 기초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곳이지. 사람이 얼마나 죽었을까? 계엄군은 폭도 세 명이 죽었다고 말했지만, 정말 죽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첫날, 그날 아침, 내가 광주에 들어가자마자 한 장소에서만 센 게 179구였어. 차에 깔려 죽고, 두들겨 맞아 죽고, 사지가 잘려 죽고, 온갖 끔찍한 방법으로 살육당한 시신들… 그걸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며 숫자를 셌어. 손가락을 들어 하나, 둘, 셋, 넷… 시내를 헤집고 다니며 눈에 띄는 시체는 모조리 셌어… 그날 저녁 기사를 전송하기 위해 도시외곽으로 나오면서 내린 결론은, 한국정부의 발표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이었지. 죽은 건 세 명이 아니야. 내 눈으로 그 끔찍한 시신들을 하나하나 셌다고.

Terry Anderson

앤더슨은 광주 전라남도청 옆에 있는 호텔에 묵었다. 도청은 계엄군이 최종진격을 했을 때 시민군이 끝까지 저항하던 최후의 보루였다. 계엄군은 호텔을 향해서도 총격을 가했는데, 당시 앤더슨이 묵던 방의 벽에 붙어있던 숙박비 알림판에도 총탄이 날아와 구멍을 뚫었다.

그날 새벽에 우리는 잔뜩 겁에 질려 밖으로 나왔어… 한국군 대령이 지프를 타고 지나가길래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지. “대령, 대령, 대령!” 그가 멈춰서더군. “김 대령님, 오늘 작전으로 사람이 얼마나 죽었습니까?”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두 명이라고 대답하더군요. “군인 한 명과 반란군 한 명이 죽었소.” 우리는 건물을 돌아 도청 안으로 들어갔어. 앞마당에 쌓여있는 시신만 17구가 되더군. 그 자리에 나 말고 특파원이 두 명 더 있었는데, 최대한 흩어져서 시신을 찾아보자고 했지. 우리는 각자 구역을 나눠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고, 그렇게 해서 확인한 시신은 수백 구에 달했어. 우리가 도청에서 알아낸 게 그 정도였으니, 광주 전체에서 죽은 사람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알 수 없지.

Terry Anderson

그는 이렇게 취재한 것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기사를 작성했다.

계엄군은 공식적으로 셋이 죽었다고 발표했으나 총알세례를 받아 벌집이 된 한 건물 안에서만 기자는 시신 16구를 발견했다. 시민군 지도자들에 따르면 그날 죽은 사람만 261명이라고 했다. 오랜 시간 기자생활을 했지만 이토록 많은 시체를 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학생들에 따르면, 매장하기 위해 가족들이 수습해 간 시신도 많고, 배수로, 공터, 공사장에 버려진 시체도 많았다.

Terry A. Anderson, “Government troops retake Kwangju,” May 26, 1980

Gwangju Uprising, May 18, 1980 – May 27, 1980

AP특파원들은 ‘인간의 고통을 일관성있고 정확하게 취재하는 것을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1996년 사진

테리 앤더슨

Terry Anderson

해병대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으며, 1974년부터 AP특파원이 되어 일본, 한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거쳐 중동에서 활약하였다. 박정희 암살소식을 최초로 타전하여 단독특종보도하였고, 광주학살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1985년 레바논전쟁 당시 베이루트에서 이슬람무장단체에게 납치되어 6년 9개월 동안 감금되어있다 풀려났다. 이후 회고록을 출간하였으며 민주당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컬럼비아, 오하이오, 켄터키, 플로리다 대학에서 저널리즘 강의를 했다.

여기 수록된 AP특파원들의 인터뷰는 2012-2014년 실시된 것입니다.

“AP 저널리즘이 추구하는 기자정신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오늘날 위기에 빠진 한국의 언론생태계에 울리는 경종이 될 것이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AP, 역사의 목격자들

목숨을 걸고 전세계 뉴스현장을 누비는 특파원들의 삶과 도전

이 글은 《AP, 역사의 목격자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Series Reading: AP, 역사의 목격자들
  1. 천국 문 앞에서도 AP 기자를 만날까 봐 무섭군
  2. AP특파원들이 말하는 기자에게 필요한 7가지 자질
  3. 무엇을 기사로 쓸 것인가? 언론이 해외뉴스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
  4. 미국언론이 애정하는 나라들
  5. 김대령님, 제가 시신을 직접 세보았습니다.
  6. AP특파원들의 소름 끼치는 임무
  7. 핵심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AP특파원이 선호하는 취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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