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믿음 vs 증오

학살전쟁

종교개혁가들은… 성모마리아와 성인들에 대한 숭배를 금지했으며, 이들을 형상화한 이미지들을 없애버렸다. 기독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남성적인 세계를 구축해냈다. 기독교도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강력한 이미지와 신화를 뽑아냄으로써, 기독교의 모든 것을 지식에만 호소하는 정서적으로 빈곤한 지극히 남성적인 사건으로 만들어 버렸다. 더 근본적인 수준에서 중요한 인물과 ‘신들’은 이제 모두 남자가 되었다.

—카렌 암스트롱 Karen Armstrong
흑사Black Death로 죽은 사람들을 묻는 사람들의 모습.

하지만 1400년대 말 유럽 전역에 갑작스럽게 폭력적인 종교박해가 휘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신대륙 식민지까지 덮친다. 이러한 테러정치는 150년 동안 활활 타올랐으며, 사람, 자원, 부를 모두 불태워 잿더미로 만든 뒤 사라진다. —571

종교개혁 이후 다양한 프로테스탄트 교파가 등장하는데, 그중에 아나밥티스트anabaptist가 있다. 독일어를 쓰는 지역 남부의 순박한 농민들 사이에서 시작된 이 교파는 예수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는 것이 교리의 핵심이다. —572

이들은 종교적 관용, 비폭력, 평화를 옹호했다. 일부일처제를 유지했지만, 아이는 공동으로 길렀다. 정치, 금융, 상거래, 송사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족적인 농촌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에만 온 힘을 기울였다. 자기 재산의 10분의 1을 공동재산으로 바쳤고, 농기구, 생필품, 노동력, 땅을 공유했다.

이들에게 땅을 빌려준 ‘부재지주’들은 이들이 토지소유권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불안을 느꼈다. 종교개혁의 지도자들 역시 이 온화하고 평화로운 프로테스탄트들을 진정한 기독교운동이라고 갈채를 보내기는커녕, 자신들을 후원하던 귀족들 편에 서서 그들을 비난한다. 마침내 1529년 슈파이어의회에 참석한 성직자들은 아나밥티스트를 발견하는 즉시 그 자리에서 짐승처럼 잡아죽여야 한다고 결의한다.

루터는, 아나밥티스트가 독일전역으로 확산되며 자신의 교세를 위협하기 시작하자 이들을 잘못된 교리를 추종하는 ‘이단’이라며 모조리 잡아죽여야 한다고 귀족들을 획책한다. 칼뱅 역시 아나밥티스트들은 ‘살인자보다 사악한’ 종자들이기에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노인이든 모조리 잡아죽이라고 선동한다.

오히려 가톨릭은 이들에 대해 너그러웠다. 가톨릭 신부들은 이들이 잠시 길을 잃은 것 뿐이니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요청한다.

아나밥티스트들을 뒤주(배럴)에 넣어 죽이는 루터교도들.

어떤 이들은 벽에 매달려 사지가 찢어지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불에 타 재가 되었고, 또 어떤 이들은 기둥에 묶여 구워졌다…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이기도 했고… 칼로 머리통을 베기도 했다… 어두운 감옥에서 굶어죽어 시체로 썩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죽이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여겨지는 아이들은 회초리로 매질을 한 뒤 몇 년 동안 지하 감옥에 가뒀다… 뜨거운 꼬챙이로 뺨에 구멍을 뚫었다… 또 많은 이들을 잡아서 낯선 곳으로 강제로 이주시키기도 했다. 낮에는 날지 않는 올빼미나 까마귀처럼 바위 틈, 숲속, 동굴 같은 곳에서 숨어 살아야만 했다. —577

Stake(Impalement) 유럽인들이 자주 사용하던 고문+사형 방법. 항문이나 질에 말뚝을 꽂아놓고 며칠 기다린다. 물론 산 채로.

아나밥티스트를 비롯한 ‘이단’ 종파 학살은 유럽전역에 걸쳐 곳곳에서 벌어졌다. 1523-66년 사이 네덜란드에서만 1만 3,000여 명이 다양한 방법으로 공개살육되었다고 한다.

평화, 안정, 번영으로 아름답게 빛나던 에스파냐 왕실은 편집증적 발작을 앓더니 마침내 토르퀘마다의 꾐에 넘어가고 만다. 가톨릭신앙에서 벗어난 행위나 관습이 행해지고 있는지 철저히 조사하라는 왕명이 떨어지고 에스파냐에 본격적인 테러정치의 문이 열린다. 토르퀘마다는 자신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여 저인망식 사상검증을 실시하고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반항하는 사람은 누구든 잡아들여 고문을 했다. —591

이단이라는 혐의를 받는 사람은 납치하듯 끌려가 쥐가 우굴거리는 독방에 갇혀 있다가 비밀리에 재판을 받았다.

재판은 자신이 이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었지만, 이단은 순수히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거의 예외없이 자백을 받기 위한 고문을 했다.

고문장에는 종교재판관들과 종교재판소가 지정한 의사 한 명, 공증인 한 명이 배석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Strappado (corda). 유럽인들이 자주 사용하던 고문방법. 팔을 뒤로 하여 팔목을 밧줄로 묶어 매단 뒤 줄을 잠깐 놓았다 잡는다. 어깨, 팔목, 손목 관절이 다 빠진다.

13살 어린 소녀도 80대 할머니도 가차없이 고문했다. 임산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가 낳을 때까지 감옥에 넣었다가 출산과 동시에 고문실로 끌려갔다.

자백을 한 사람은 대부분 화형선고를 받는다. 이들의 재산은 교회가 몰수하며, 그중 20-50퍼센트는 밀고자에게 주었다. 당연히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허위밀고가 쏟아졌고, 이를 통해 재산을 축적한 사람도 많았다.

도시를 순회하며 지역의 이단들을 고문한 뒤 마지막 피날레로 성직자들은 도시의 중앙광장에서 성대한 ‘오토다페’를 진행한다. 온갖 신체토막들과 피범벅이 된 이단들을 십자말뚝에 묶어놓고 종교의식을 진행한 다음 마지막으로 불을 지른다. 사람들이 모두 타서 재가 될 때까지 주민들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오토다페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이단으로 몰리기 때문에 누구도 빠짐없이 화형식을 직접 봐야 했다.

Bloody Mary (Mary I of England) 1553-1558

영국은 가톨릭, 영국교회(성공회), 프로테스탄트들이 뒤엉켜 서로 잡아다가 고문하여 죽이는 혼란의 도가니로 빠진다. 이단의 아내라는 이유로 무차별 강간하고, 그의 아이들도 가차없이 죽였다. 퓨리턴은 예수회 수도사들을 잡아다 목을 잘랐고, 영국교회는 장로교신도들을 죽였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가톨릭교도들은 프로테스탄트 신도들의 집을 불태우고 약탈했다. 아나밥티스트는 모든 종파의 먹잇감이었다. 퓨리턴, 영국교회, 장로교, 가톨릭은 믿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잡아 죽였지만 단 하나 기이한 믿음을 공유하는 듯했다. 하느님이 인간제물을 원한다는 것이다. —591

바씨학살 Massacre of Vassy 1561년 3월 1일. 예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싹쓰리

일요일이자 성바르톨로메오 축일이었던 1572년 8월24일 새벽3시, 기즈공작은 개신교도(위그노)들의 수장 콜리니의 집을 습격하여 그를 죽인 다음 시체를 창밖으로 던진다. 이것은 대량 도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왕실군이 파리의 위그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가톨릭을 믿는 일반시민들도 몰려나와 이웃을 사냥하기 시작한다.

위그노를 숨겨주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 집에도 가차없이 쳐들어가 그 집의 가족도 모두 죽였다. 먼저 남편을 죽이고 아내를 죽이고 아이들을 죽였다. 임산부는 배를 갈라 태아를 벽에 내려쳤다.

St. Bartholomew’s Day massacre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St. Bartholomew’s Day massacre
처참한 파리 거리를 둘러보느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검은 옷)
William the Silent, Prince of Orange, 네덜란드 건국의 아버지.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아 the Silent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광신도에게 암살당한다.
노예운송을 극대화하기 위한 영국의 선박설계도

Note

  1. Lucretius, De rerum natura, vol. 2, Book 1, 101:615.
  2. Karen Armstrong, The Gospel According to Woman, 91.
  3. Karl Kautsky, Communism in Central Europe at the Time of the Reformation, 187.
  4. R. J. Smithson, The Anabaptists, 131.
  5. Belfort Bax, The Peasants War in Germany at the Time of the Reformation, 352.
  6. Karl Kautsky, Communism in Central Europe, 187.
  7. Belfort Bax, The Peasants War, 118-30.
  8. Johannes Janssen, History of the German People at the Close of the Middle Ages, 4:208.
  9. Martin Luther, The Works of Martin Luther, 4:248-54.
  10. Preserved Smith, The Life and Letters of Martin Luther, 164.
  11. Ibid., 165.
  12. Martin Luther, The Works of Martin Luther, 261-72.
  13. Cambridge Modern History, 11:191.
  14. Paul Johnson, A history of Christianity, 254.
  15. Elphege Vacandard, The Inquisition, a Critical and Historical Study of the Coercive Power if the Church, 198.
  16. Henry Steele Commager, The Empire of Reason: How Europe Imagined and America Realized the Enlightenment, 8.
  17. Anne Llewellyn Barstow, Witchcraze: A New History of the European Witch Hunts, 161.
  18. William Edward Hartpole Lecky, History of European Morals, 2:21.
  19. Edward Dowden, Michel de Montaigne, 144.
  20. J. A. Froude, Life and Letters of Erasmus, 141.
  21. Frederick Seebohm, The Oxford Reformers, 230-46.
  22. Philip Hughes, The Reformation in England, 1:202.
  23. Preserved Smith, The Life and Letters of Martin Luther, 193.
  24. E. K. Chambers, The Medieval Stage, vol. 2, 323-26.
  25. Winston Churchill, History of the English-Speaking Peoples, 2:223.
  26. Francois Gulliume Guizot and Madame Guizot de Witt, History of France from the Earliest Time to 1848, 3:303.
  27. John William Allen, History of Political Thought in the Sixteenth Century, 295.
  28. Louis Batiffol, The Century of the Renaissance, 201.
  29. Jules Michelet, Historie de France, 3:476.
  30. Ralph Roeder, Catherine de Medici, 463.
  31. Louis Battifol, The Century of the Renaissance, 236.
  32. Leopold Ranke, History of the Reformation in Germany, 1:159.
  33. Ludwig Pastor, History of the Popes, 12:508.
  34. Ibid., 12:286.
  35. J. R. Motley, Rise of the Dutch Republic, 2:40.
  36. Cambridge Modern History, 3:646.
  37. Ibid., 3:258.
  38. Thomas Carlyle, Oliver Cromwell’s Letters and Speeches,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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