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증거들을 통해 여신의 몰락을 초래한 주요원인이 바로 문자라는 것을 자세히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문자, 특히 알파벳문자가 문화 속으로 편입될 때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하는지 설득하고자 노력했다. 물론 문자가 안겨주는 상당한 혜택을 고려할때, 이러한 부작용은 지금까지 사실상 간과되어 왔지만 실제로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나의 접근방식은 기존의 역사적 분석방법과는 다르다. 시대마다 등장한 메시지의 ‘내용’보다는 그 내용을 소통하기 위해 알파벳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인지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이 책의 작가로서, 또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또 과학자로서 나는 가장 절친한 몇몇 친구들과 의견을 달리해야 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어른이 되고난 뒤 나는 두 세계에서 살았다. 하나는 외과의사에게 요구되는 세계였고 다른 하나는 문학이라는 상상의 세계였다. 나는 내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엄청난 양의 의학교과서 앞에서 늘 경이로움과 동시에 절망을 느꼈다. 의학책 속에 쓰여진 한 문장 한 문장이 나보다 앞서 살아간 무수한 의사들이 캄캄한 골목을 헤치며 불완전한 시행착오 과정을 무수히 인내하며 쌓아온 지혜의 결과물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조금씩 쌓아온 지식을 모아서 체계화하고 분류하고 설명하고 전달할 수단이 없었다면, 의학은 물론 그 어떤 분야도 지금 우리 문화만큼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나 백과사전에 알파벳 순으로 정렬된 색인은 문자가 주는 위대한 선물 중 일부에 불과하다. 또다른 차원의 선물이 존재한다. 글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오롯이 미학적인 즐거움이다. 문학은 개개인을 에워싸고 있는 껍질을 깨고, 독자의 마음을 그들보다 앞서 살았던 사려깊은 작가들이 마련해놓은 상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게 만들어준다. 내게 그러한 기회를 준 사람으로 예이츠, 플라톤, 셰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를 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깊이 감사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문자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면 나는 결코 그들을 만날 수 없었고 또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자의 숨겨진 부작용을 찾아내는 복잡한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나 역시 문자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이 책을 쓰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아이러니였다. 또한 좌뇌의 분석적, 선형적, 순차적 사고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추상화하는 좌뇌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머릿속의 과학적 기질은 성가시게 달려드는 파리처럼 끊임없이 ‘그래, 하지만’이라고 딴지를 걸었다. 이런 의심은 이 책을 쓰는 힘이 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 더 나은 작품을 쓸 수 있었다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핵심을 명확하게 하려다보니 책에서 우뇌·좌뇌, 여성적·남성적, 양육자·도살자, 직관·분석과 같은 2원론을 지나치게 자주 내세운 느낌이 든다. 실제로 개개인을 이러한 기준으로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서로 대립하는 항목 안에서도 다양한 차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템플릿을 인간의 역사에 끼워넣은 것은, 그래야만 복잡한 흐름 속에 존재하는 패턴을 명확하게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이 아니었다면 이 책에서 설명한 역사적 흐름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도서관을 가득 메운 논리학, 과학, 철학, 수학의 천재들이 써낸 책들은 좌뇌의 경이로운 업적이다. 이들이 우리 인류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것은 여기서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좌뇌는 자신의 고유한 발현―남성적 에너지―을 통해 인류의 위대한 순간들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인류에게 최악의 순간을 안겨준 힘 역시 좌뇌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뉴턴 뒤에는 늘 연쇄살인마 잭더리퍼Jack the Ripper가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이 보여주고자 노력한 또하나의 주제는, 좌뇌는 극단을 향해 달려나가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우뇌가 견제의 고삐를 놓치는 순간, 좌뇌는 집단광기로 치달을 수 있다. 어떠한 새로운 발견, 새로운 사상, 새로운 책도 초기에는 열광적인 흐름을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단계를 넘어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고난 뒤에야 그 업적은 제대로 평가할 수 있으며 그
때서야 비로소 건전하고 유익한 기능을 한다.

나는 이 책에서 우뇌적 속성을 긍정적인 것으로만 묘사했다. 하지만 질서를 부여하는 좌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뇌 역시 균형을 잃고 분별없는 무정부상태와 감각의 과잉으로 치달으며 또다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핵심은 반대편 뇌를 억압할 정도로 어느 한쪽 뇌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은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 이 두 가지 속성이 늘 서로 보완해주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균형상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또다른 이유는, 종교와 관련한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그리스신화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문득 유럽에서 벌어진 참혹한 종교전쟁이 그리스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다양한 신앙을 감탄할 만한 예절과 존중으로 서로 관용하고 인정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내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리스인의 관용은 왜 사라진 것일까? 무엇이 그것을 인류문화에서 지워버렸을까?

오늘날 자신의 종교를 드러낸다는 것―유대인, 무슬림,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거나 더 나아가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제2차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경험하며 자란 나에게 종교를 선택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실존적 문제였다. 서양문화 속에 함께 살아가는 이들 네 종교가 믿는 신은 단 하나다. 실제로 그들도 자신들이 믿는 신이 서로 ‘같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인정한다. 그런데 이들은 왜 그토록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종교 때문에 서로 죽이는 일이 없었던 시대가 역사적으로 존재한다면, 그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무엇이 지금과 같은 문화를 낳은 것일까? 나는 이 책 첫 머리에서 인용한 소포클레스의 문장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에 해답의 열쇠가 스치듯 지나갔다.

“위대한 어떤 것이 아무런 재앙 없이 인간의 삶에 출현한 적은 없다.”

바로 그것은 알파벳이었다. 알파벳은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하지만 소포클레스의 통찰처럼 어떠한 저주를 불러왔을 것이 분명하다.

‘위대한 여신을 누가 죽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탐구를 시작했다. 내가 찾아낸 결론은 ‘여신의 목을 조른 악당은 바로 문자’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결론이 불쾌하게 여겨질 수도 있고 터무니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미 입증된 기존의 학설들에 의존하여,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수집하고 나열하여 거대한 모자이크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했다.

어떤 사건이든 그것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체적인 상황과 조건이 있겠지만, 이들을 전체적으로 늘어놓고 보면 문자, 특히 알파벳이 발휘하는 영향력을 보여주는 어떠한 패턴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여자의 권리, 이미지, 여신의 흥망과 문자의 흥망이 서로 상반되어 나타나는 패턴이 드러났다.

21세기는 인류에게 새로운 황금시대가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관용, 배려,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같은 우뇌적 가치는 오랜 시간 인류를 지배해왔던 좌뇌적 가치를 압도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다. 이미지는―어떤 종류이든―인류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사진술과 전자기의 경이로운 혁신이 세상에 확산되어 나갈수록 세상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진보하고 발전할 것이다. 이미지의 확산을 통해 우뇌적 가치가 중시될수록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전반적인 감각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

함무라비법전이나 로제타석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라스코와 알타미라의 그림들이 존재했다. 태초에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자가 출현했고 이로부터 5000년 동안 세상을 지배했다. 이제 이미지가 다시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자는 오랜 시간 무시되고 억압받아왔다. 하지만 이미지의 시대에 여자는 자신의 잠재적 가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누릴 것이다. 물론 지역별로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거대한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이 책이 이러한 통찰을 더 많은 사람들에 게 전파하고, 더 깊이있는 연구를 촉발하는 역할을 하기 바란다.

―레너드 쉴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