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철학자 하면 당연히 노자와 공자를 떠올릴 것이다. 이들은 ‘신’이라는 개념 자체를 상정하지 않는 철저한 인본주의자들로, 삶에 대한 실용적 가르침을 제시한다. 공자는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남성적 권위와 문화를 옹호하는 반면, 노자는 평등을 강조하며 여성적인 관점과 자연을 추구한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 공자는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고전을 공부하라고 처방하는 반면, 노자는 직관을 따르라고 처방한다.
공자보다 조금 먼저 등장한 노자는 신비에 싸여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그가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인지 아닌지도 분명하지 않다. 전설에 따르면 노자는 주나라의 왕실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다고 한다. 나이가 들었을 때 그는 왕실의 아첨꾼들의 궤변에 환멸을 느끼며 책 속에서 지낸 세월이 덧없다고 결론내린다. 그는 존경받는 관직에서 물러나 자연속에서 은거하며 살겠다고 마음먹는다.
노자의 道는 기본적으로 ‘자연의 길’을 의미한다. 여름날 대지에 쏟아진 빗방울들이 흘러 웅덩이가 되고 개울이 되는 것이 바로 道다. 또 이 물줄기들이 시내가 되어 강으로 모이고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도 道다. 바다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구름을 만드는 것도 道다. 그렇게 만들어진 적란운이 공기와 마찰하며 대지 위에 소중한 물을 다시 뿌려주는 것도 道다. 한여름 쏟아지는 빗물이 우리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다시 개울이 되고 시내를 이루는 것도 道다. 우리는 이처럼 道에 깊이 젖어서 살아간다.
세상을 인위적인 범주로 구분하는 탓에 우리는 道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문화적 관습의 베일을 벗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道의 흐름 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 육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와 섬유소도 道의 일부이기에, 우리는 해초처럼 그 흐름 속에서 부드럽게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자연의 리듬 속에서, 이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간다면 정치, 제도, 남녀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道라는 강물 속에서 평온하게 흘러갈 것이다.
노자는 이것이 너무도 쉬운 일이라고 말한다. 인류가 그토록 공을 들여 고안해낸 온갖 책략들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 인간의 책략은 ‘자연의 길’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자는, 인간이 만들어낸 책략 중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언어라고 말한다. 그래서 《도덕경》을 시작하는 첫 두 행은 다음과 같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다. 이름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에 반해 공자는 언어를 바로잡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보았다.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국가를 이끄는 중책을 맡으면 어떤 일을 먼저할 것인지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正名
이름을 바로잡겠다.
언어와 이름에 현혹되지 말고 신경쓰지 말라는 노자의 가르침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름을 붙이는 것, 신분, 지위, 성씨를 쓰는 것은 모든 가부장문화의 기본요소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정치적인 야심에 불타는 성실한 교사였던 공자는, 당시 여러나라를 옮겨다니며 자신의 새로운 철학을 받아들이도록 봉건영주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유교는 가족, 하늘, 정부, 동료, 친구, 적, 조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윤리적인 지침을 꼼꼼하게 제시한다.
그런데 여기서 여자에 대한 내용은 단 한 줄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그 한 줄도 아무 근거도 없는 여성혐오발언에 불과하다. 공자는 남자와 여자를 지배-종속 관계로 바라보았다. 남자는 우선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그 다음 아내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하고, 그 다음 자식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가족 안에 이러한 지배-종속관계가 확립되어야, 그보다 큰 사회가 지탱될 수 있다고 믿었다.
공자철학에서는 남자만이 재산을 관리할 수 있고, 여자는 어떠한 재산도 소유할 수 없다. 공자는 가족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다음 중요한 관계는 형과 아우의 관계다. 공자의 가르침에서도 道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그가 말하는 道는 가족의 수직계층화를 정당화하는 근원적 이유를 지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노자의 道와는 전혀 다르다.

三教: 공자, 노자, 붓다가 조우하다, 丁雲鵬, 16세기 작품.노자철학과 공자철학은 두 개의 싸인곡선처럼 중국의 긴 역사 속에서 서로 얽히며 경쟁했다. 이들은 도교와 유교라는 학파를 형성하며 서로 멸시하고 조롱했다. 노자가 道를 따르는 것의 가장 큰 장애물로 ‘언어’를 꼽았던 것처럼, 중국에서 문자가 융성할 때마다 유교가 부흥하고 도교가 쇠퇴했다. 그리고 유교가 부흥할 때마다 여성의 지위는 추락했다.
10세기 중국에서 제지술과 인쇄술이 급속하게 발달하면서 문자가 급격히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유교는 대대적인 부흥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인류역사상 가장 기이한 풍습이라 할 수 있는 ‘전족’이 이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한다.


위기를 느낀 도교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노자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정을 내린다.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를 모델로 삼아 도교를 개혁한 것이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기존에 내려오던 다양한 경구와 책들을 수집하여 ‘도교경전’을 만드는 것이다.
- 道藏 Daozang:도교의 경전. 최초의 도장은 1016년 완성되었다. 현재 총 548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 道觀 daoguan: 도교사원. 거대한 도도관을 곳곳에 짓기 시작한다.
- 道士 daoshi: 도교의 사제. 불교승가를 본따 만들었다. 여자는 女冠(여관)이라고 한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사제는 대부분 남자로 채웠다. 불교승려들처럼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노자를 신으로 받들기 시작한다. 인위적으로 꾸민 ‘도관’에서 ‘도사’들이 ‘도장’을 낭송하며 정교하게 짠 의례를 거행하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한 것이다.

노자가 “도덕경”을 쓴 지 1600년이 지난 뒤, 자연의 흐름을 막지 말고 그 흐름 속에 몸을 맡기라는 가르침을, 사람들은 거꾸로 해석하여 제단을 쌓고, 사원을 짓고, 욕망을 꺾고, 이름을 붙이고, 문자로 진리를 고정하고, 율법을 만들고,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를 세운 것이다. 노자의 가르침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은 한편으로 ‘문자’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역사적인 예시이기도 하다. 문자를 거부하는 가르침이나 지혜는 대부분 인류 역사 속에서 흔적없이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엄격한 가부장을 내세우는 아버지 유교가 지배집단의 종교였던 반면, 도교는 어쨌든 인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민간신앙으로 자리잡는 데 성공한다. 중국의 도교는 한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지배층을 중심으로 전파되기도 하였지만, 민중 속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우리 땅에는 ‘여신붓다’가 먼저 들어와 민중들의 삶 속에 탄탄하게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