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칼뱅

  • 농민전쟁과 아나밥티스트 학살

    농민전쟁과 아나밥티스트 학살

    신약은 농민들에게 계시와도 같았다. 신약을 직접 읽게 되면서, 예수가 어떻게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섰는지 깨달았고, 자신들이 땅의 주인이라는 예수의 예언을 알게 되었다. 많은 독일인들이 가톨릭의 권위에 대한 루터의 저항을 사회개혁에 대한 요구라고 해석했다. 그들은 성서를 혁명안내서로 둔갑시켰고, 루터를 자신들의 대의를 앞장서서 밀고나가는 혁명가로 인식했다. 종교개혁이 시작될 때 독일 땅의 3분의 1 이상을 가톨릭교회가 가지고 있었고…

  • 유럽의 종교적 발작

    유럽의 종교적 발작

    끊임없는 개혁요구를 무시하고 수 세기 동안 미적거리던 교황청은 결국 종교개혁이라는 강타를 맞고 비틀거리다 마침내 무릎을 꿇고 만다. 루터가 95조 반박문을 게시한 지 불과 17년 만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독일의 절반과 영국, 덴마크, 스코틀랜드, 스위스에서 프로테스탄트가 가톨릭의 영향력을 눌러버린 것이다.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도 불만으로 들끓었다. 1527년 로마대약탈에서 제대로 회복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가톨릭 자체가 사멸할…

  • 하느님의 나라는 천국일까 지옥일까

    하느님의 나라는 천국일까 지옥일까

    1520년대 칼뱅의 위세가 급격하게 뻗어나가자 가톨릭교회는 칼뱅과 그 신도들을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박해를 피해 칼뱅은 스위스로 피신하였고, 여기서 제네바의 원로(장로)들에게 신임을 얻는다. 원로들을 등에 업은 칼뱅은 자신의 신정국가 사상을 하나씩 현실속에서 구현해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너무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칼뱅에 대해 제네바시민들의 불만이 폭주했고, 결국 주민투표를 통해 그들을 쫓아내버린다. 미치광이 원리주의자들이 쫓겨나자 제네바시민들은 거리로…

  • 누구를 위한 종교개혁인가?

    누구를 위한 종교개혁인가?

    1517년 10월 31일 정오, 무명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가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는 95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의 한 교회 문에 게시한다. 이 사소한 행동이 역사를 바꾸는 종교분열의 출발점이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시기 프로테스탄트운동이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유럽에 새롭게 보급된 인쇄기술이었다. 프로테스탄트는 설교문과 팸플릿을 빠르게 인쇄하여 곳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