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번역계에서는 조용해질만 하면 오역논쟁이 튀어나옵니다. 이번에 제물이 된 작품은 카뮈의 민음사판 [이방인]이군요.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이자 알베르 카뮈의 문학을 오래 연구해온 김화영선생의 번역입니다.
최근 출판시장이 불황을 겪는 와중에도 클래식 명작들을 새롭게 번역하여 내놓는 출판사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습니다. 물론 저작권이 소멸되어 초기투자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는 요인도 한 몫하지요. 어쨌든 새롭게 기획되는 클래식선집들은 시장에 파고 들기 위해서 기존의 클래식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라는 거대출판사의 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세움이라는 출판사에서 카뮈의 [이방인]을 새롭게 번역해서 출간할 계획인가봅니다. 이 출판사의 블로그에는 번역자가 (또는 번역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30여개의 글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블로그보기)
이 글에서 저자는 김화영의 잘못된 번역선택을 꼼꼼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제대로 번역하려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자세하게 적고 있습니다. 몇몇 글을 읽어보니 저자의 주장에 수긍하게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어떤 번역이든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죠. 사실 민음사나 문학동네 같은 소위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오는 문학작품 중에도 함량미달의 번역이 매우 많습니다. 저도 가끔 화가 나 던져버리기도 합니다. 이들은 대개 해당 문학의 권위자들(대개 석사이상의 문학전공자들)을 번역자로 섭외하는데, 원문의 미묘한 감정이나 묘사 등을 지나치게 생략해버리거나, 때로는 명제적 의미조차 다르게 번역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어쨌든 세움출판사의 노력은 성공한 것 같습니다. 신문에 이번 번역논쟁이 주요신문에 기사로 등장하였고 이로써 또다시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으니까요. (기사보기: ‘이방인 번역서 이의제기’ 보도 이후 누리꾼 논쟁 가열)
번역에 대한 계속되는 평가와 비평은 더욱 양질의 번역을 생산하기 위한 밑거름이 됩니다. 예컨대 한국영화는 ‘영화비평’이라는 영역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영화제작자와 비평가는 적대적 공생을 하면서 서로 발전해왔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왜 영화처럼 비평에 힘입어 상승발전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영화는 일단,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동일하다는 겁니다. 전작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다면 다음 작품에서 그 평가에 대한 피드백을 반영합니다. 하지만 번역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번역에 비판을 받으면 번역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번역가에 대한 처우나 지위가 불안하기 때문에 굳이 비판을 받으면서 힘든 번역작업을 계속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또한, 이런 풍토로 인해 번역비평은 대개 개선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하지마라’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는 비평의 효과 역시 생산적일 수 없습니다. 대개 자신의 똑똑함을 자랑하거나, 사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한 글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번역을 하는 사람이나 비평을 하는 사람이나 모두 번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만큼, 기존의 번역가의 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반적인 번역수준을 문화적으로 제도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덧붙이고 싶은 말:
- 세움출판사가 내세운 카피는 도발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사실 지극히 타당한 진실입니다. 카뮈의[이방인]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읽을 수 없습니다. 김화영의 [이방인]은 김화영의 ‘해석’이 반영된, 한국화한 [이방인]입니다. 아무리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해도 원작이 될 수는 없습니다.
- 잘못된 번역을 잘 찾아내고 지적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제대로 된 번역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영화비평가가 직접 영화를 만들지 않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