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궁합- 콜로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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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를 하면서 ‘영어단어만 외어서는 안 되고 콜로케이션을 외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겁니다. 예컨대 ‘약속을 하다’라고 말하려면 ‘ do a promise’라고 하면 안 되고 ‘make a promise’라고 말해야 하죠. 콜로케이션collocation이란 말 그대로 ‘함께 발생한다co+location’는 뜻입니다. 어휘는 이처럼 어울리는 궁합이 맞는 다른 어휘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콜로케이션은 단어만 외워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외국어학습자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외국인이 TV에 출연해 이야기하다가 “진지를 먹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콜로케이션이 언어습득과정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도 콜로케이션 규범을 깨기도 합니다. 물론 ‘제정신’일 때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지만 혼돈의 커뮤니케이션 – 번역 -을 할 때 그런 실수를 자주 – 매우 자주 – 합니다. 학생들의 번역을 첨삭하다가 발견한 문장입니다.

  1. 만약 최대수준에서 요구를 했다면 언제든 줄여서 타협해볼 수 있다.
  2. 최대한 요구할 수 있는 상한선에서 시작하여 조금씩 줄여나가자.

위 예문에는 모두 ‘요구를~ 줄이다’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두 번째 문장은 목적어가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무엇을 줄이라는 것인지 아리송하지만 아마도 이 역시 ‘요구를 줄이라’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 글을 쓴 사람(번역자)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요구라는 행위에는 수준이 있고, 그 수준에는 높낮이가 있으니 그 높이를 낮추라는 명제를 표현한 것일테지요.

하지만 같은 명제적 의미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말로 표현할 때는 언어마다 특별히 선호하는 어휘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해 어휘선택과정에 관습이 작동한다는 뜻입니다. (흔히 ‘관용적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이처럼 명제적 사실과 무관하게 언어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선호하는 어휘의 조합을 ‘연어적 제약collocational restrction’이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위 예문에서 사용된 ‘줄이다’라는 동사는 ‘수준을 아래로 향하다’라는 명제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요구’라는 명사와는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연어적 제약을 어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영어에서는 ‘이를 깨끗이 하는 행동’을 표현할 때 brush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한국어에서는 – 아시다시피 – ‘닦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죠. 이것을 영어로 그대로 번역한다면 burnish, furbish, polish, mop 같은 동사가 나올 겁니다. (“Mop your teeth!”라고 말하면 미국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반대로 brush의 사전적 등가어는 ‘솔질하다’이지만, 연어적 제약으로 인해 실제 번역은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나올 것입니다.

  • brush the teeth – 이를 닦다
  • brush the powder – 가루를 털어내다
  • brush the hair – 머리를 빗다
  • brush the paint – 페인트를 칠하다
  • brush her lips – 입술을 훑어내리다

도착텍스트에서 연어적 제약을 깨는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처럼 출발어에서 작동하는 연어적 제약과 도착어에서 작동하는 연어적 제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번역을 많이 해보지 않은 초보번역자들은, 출발텍스트의 단어에 얽매여 평소에는 그토록 익숙하던 한국어의 관습을 잊어버리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따라서 번역자는 언제나 자신이 번역하는 명제적 사실이 무엇인지 주의깊게 살펴야 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을 찾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참고로 위 번역예문의 출발텍스트는 “Start with your maximum reasonable request and negotiate down from there.”입니다. 한국어에서 ‘협상하다’라는 동사를 그대로 활용한다면 ‘요구수준을 낮춰가며 협상하다’ 정도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슬로우뉴스에도 게시되었습니다. http://slownews.kr/28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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