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이유: 텍스트라는 그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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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번역 온라인레슨 4

이 레슨은 [갈등하는 번역 16. 담화란 무엇인가]에서 다루는 내용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단위’로 제시되는 글 속에 존재하는 문장들 사이에는 어떠한 결합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여러 문장들이 모여 하나의 ‘의미단위’를 이루는 연속된 문장의 집합을 ‘텍스트’라고 합니다. 텍스트text는 담화discourse라고 부르기도 하죠.

텍스트:

어떤 측면에서 완결된 것으로 보이며, 하나의 목적 또는 관련 있는 여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체계적으로 구성된 일단의 말 또는 글.

텍스트 차원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텍스트 차원의 의미는 구체적인 어휘나 문장항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항목들의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텍스트 차원의 의미가 잘못 구성된 글을 읽었을 때 사람들은 흔히 이런 느낌을 받습니다.

구체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읽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이런 느낌은 특히 번역서를 읽을 때 사람들이 자주 느끼는 인상입니다.

목표언어독자에게 이전 성경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물어보면 ‘왠지 모르게 낯설다’라는 이야기만 할 뿐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명확한 문법적 실수도 없고, 어휘도 확연히 틀린 게 없기 때문에 이러한 낯섦을 자아내는 요소가 무엇인지 처음에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번역과 비교해 보면… 이전 성경은 ‘담화구조’가 상당히 잘못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담화구조란 여러 문장들이 온전한 하나의 단락으로 결합하는 방식, 또 이러한 단락들이 모여 하나의 온전한 메시지로 결합하는 방식을 말한다. 반면에 새롭게 번역한 성경은, 텍스트를 일관적이고 명확한 하나의 산문으로 만들어주는 표지기능을 하는 요소들을 아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글을 읽는 진정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 Callow, 1974: 10-11

텍스트 구성항목의 결합관계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 정보의 배열순서: 주제구조thematic structure와 정보구조information structure
  • 사람이나 사건 사이의 상호관계: 표층결속성cohesion
  • 문장 아래 깔려있는 의미: 심층결속성coherence과 함축implicature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고 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메시지는 일렬로 나열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컨대 어떤 사건을 말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최소단위로 분절하여, 그러한 메시지조각들을 주어진 맥락 속에서 독자가 좀더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배열해야 합니다.

여기서 메시지의 최소단위는 ‘절clause’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행위(동사)가 있는 절이 곧 ‘최소 메시지단위’ 또는 ‘최소 정보단위’가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분절한 메시지를 일렬로 나열합니다. 말을 하는 사람이나 글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어떤 정보를 먼저 제시하고 어떤 정보를 나중에 제시해야 독자/청자가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계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진정한 일관성 있는 텍스트가 만들어집니다.

일괄성 있는 텍스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의미를 반영하여 절을 배치해야 합니다:

  • 경험적 의미 experiential meaning: 사건이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시간이나 인과관계의 순서에 따라 정보를 배치해야 한다.
  • 대인적 의미interpersonal meaning: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이나 의도에 따라 정보를 배치해야 한다. 예컨대 영어의 경우, 정보를 제공할 때(평서문)와 정보를 요구할 때(의문문) 주어와 동사를 놓는 순서가 달라진다.
  • 텍스트적 의미textual meaning: 특별한 정보를 뒤에 배치함으로써 강조하거나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또한 독자들에게 익숙한 것을 앞에, 낯선 것을 뒤에 놓음으로써 이해하기 쉽게 도와줄 수도 있다. 정보의 배치를 조작하고 변주함으로써 다양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번역가는 “절을 구성하고 연결하는 방식은 언어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컨대 영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문장 차원에서 아무리 정확하게 번역을 한다고 해도 그 번역결과물은 쉽게 읽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절의 연결을 고려하지 않고 번역할 경우, 개별 문장들 사이의 결합성(=텍스트성textuality)이 깨질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생산하는 말이나 글은 언제나 텍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고의적으로 비텍스트를 창조하는 시나 산문을 예외로 친다면, 실생활에서 목격할 수 있는 비텍스트는 아마도 어린아이의 말과 형편없는 번역 밖에 없을 것이다.

– M. A. K. Halliday & Ruqaiya Hasan (1976) Cohesion in English, London: Rutledge. p.24.

번역가는 절의 연결과, 이러한 연결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메시지의 그물망(네트워크)을 민감하게 감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어떠한 작가도 무관한 절을 의미 없이 나열하지 않습니다. ‘텍스트’라는 개념을 고려하지 않고 번역하면, 눈에 보이는 어휘적/문법적 등가만을 고려해서 번역하면, 세심하게 짜여 있던 출발텍스트의 그물망이 번역과정에서 훼손되어 잘 읽히지 않는 도착텍스트가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담화 수준의 오역이라고 할 수 있으며, 단어 수준이나 문장 수준의 오역 못지않게 치명적인 실수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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