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안 통하면 몸짓으로: 전문번역가들의 어휘번역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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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번역 온라인레슨 12

이 레슨은 [갈등하는 번역 PART 1. 단어수준의 번역문제들]에서 다루는 내용을 설명합니다.

책에서도 말했듯이 우리가 다루는 낱말들은 단어가 아닌 어휘입니다. 어휘는 ‘문화적으로’ 할당된 개념이기 때문에 1대1 대응이 되는 번역어를 찾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힌트와 코멘트: 의미장과 어휘집합 참조.)

그래서 단어를 단어로만 옮기려고 하다보면 전혀 다른 의미의 번역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물론, 형태를 무시할 수 없는 – 단어를 단어로 번역해야 하는 –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 텍스트의 맥락과 전체적인 의미의 흐름을 파악하여 의미에 맞는 번역문을 만들어내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의미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원문에서 선택된 단어를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텍스트에 포함된 요소들에는 어쨌든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번역가는 그러한 의도를 분석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저자의 의도를 분석하는 가장 기초적인 기술이 바로 ‘문법요소’와 ‘어휘요소’를 구분입니다. [갈등하는 번역 7장] 참조.)

대응하는 번역어가 없을 때, 전문번역가들은 그러한 난관을 어떻게 해쳐나갈까요? 전문번역가들의 실제 번역결과물을 분석하여 찾아낸 몇가지 어휘번역전략을 소개합니다.

1. 포괄적인 단어로 옮기기

이는 포괄적인 개념어는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개념들은 어휘화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 많이 사용되는 번역전략이다.

The plane circled the airport before landing.
공항에 착륙하기 전 비행기는 상공을 한 바퀴 돌았다.

The satellite orbits the Earth every 48 hours.
이 위성은 48시간마다 지구를 한 바퀴씩 돈다.

The Earth revolves on its own axis once every 24 hours.
지구는 지축을 중심으로 24시간마다 한번씩 돈다.

circle은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는 뜻이고 orbit은 자신보다 훨씬 큰 물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며 revolve는 어떤 축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한국어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구체적으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돈다”라는 말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구체적인 의미의 차이가 드러나야 하는 경우에는 다른 전략을 찾아야 할 것이다.

2. 새로운 단어 덧붙이기

원문의 의미를 보충하기 위해 새로운 단어를 삽입한다.

The police battered at the door.
경찰이 문을 마구 두들겼다.

A radical reform of our tax system.
근본적이고도 급진적인 세제개혁

The old woman mumbled a prayer.
노파는 중얼거리며 기도를 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3. 문화대체어로 옮기기

Today may companies have cited “BlackBerrys under the table” as the biggest obstacle to coherent meetings.
오늘날 많은 기업들은 회의의 흐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바로 “테이블 아래 휴대전화”라고 이야기한다.

이 번역을 할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PDA로 분류되던 ‘블랙베리’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시기였는데, 한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제품이었다. 그래서 한국독자들에게 친숙하면서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휴대전화”라는 어휘로 옮겼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보면 스마트폰에 가까운 블랙베리와 ‘피쳐폰’이라고 부르는 휴대전화 사이에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이와 같이 문화적으로 특수한 개념은 타겟독자들에게 친숙한 대체물로 바꿀 수 있다. 물론 이는 번역의뢰자가 번역자에게 어느 정도 특권을 부여했는지, 텍스트 속에서 이러한 개념이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 번역물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4. 원어를 그대로 쓰기

Everyone designs who devises causes of action aimed at changing existing situations into preferable ones.
기존의 상황을 원하는 상황으로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고안하는 행동은 모두 “디자인”이다.

“~하는 모든이들은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라는 원문을 design을 개념정의하는 말로 바꿨서 옮겼다. ‘design’은 설계, 구조, 계획 등 다양한 말로 옮길 수 있지만, 텍스트 안에서 자꾸 반복되어 나오는 경우 오히려 차용어로써 정의하는 것이 글을 간단하게 만들고 또한 독자들에게도 혼란을 주지 않는다.

물론 번역가가 이러한 차용어를 채택할 수 있는 한계는 타겟독자의 언어적 수준과 사회-언어적 규범에 기초해 판단해야 할 것이다. 차용어를 활용하고자 할 때는 위의 예처럼 따옴표를 삽입하여 독자들의 주의를 끌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5. 풀어 쓰기

Our facilities include an excellent conference and arts centre, gourmet restaurant, and beautiful terraced gardens.
우리 시설에는 훌륭한 회의장을 겸한 아트센터, 미식가들을 위한 고급식당, 계단식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정원이 있습니다.

한국어에서도 “테라스”라는 말이 있지만, 테라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의미하는지 독자들이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거짓유사어false friend/faux ami) 이 경우 원래의 형태를 풀어 써준다.

The island is accessible only by boat.
이 섬으로 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배다.

Is there any railway service here on Sundays?
여기 일요일에도 기차가 다니나요?

6. 생략하기

The panda’s mountain home is rich in plant life and gave us many of the trees, shrubs and herbs most prized in European gardens.
팬더가 서식하는 산에는 식물분포가 다양하다. 유럽정원에서는 보기 힘든 수많은 나무, 관목, 약초 등이 자란다.

원문은 “gave us”라는 말을 통해 “… 등을 우리에게 선사한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를 과감하게 생략하여 서술을 객관화하고 문장구조를 단순화하여 가독성을 높인다. 하지만 원문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생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크다고 판단될 때에만 생략을 하는 것이 좋다.

7. 그림으로 보여주기

“백마디 말보다 한번 눈으로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은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런 번역은 실험적인 전략일 수 있지만, 매우 유용하고 알찬 텍스트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크레센도에서 출간한 ‘블랙버드클래식’ 시리즈는 이런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라 볼 수 있다. 어떤 대상을 말로 설명하거나 묘사하기에 복잡한 경우, 글을 그림으로 대신하면 독자들은 훨씬 쉽게 이해한다. 물론 출판사와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이러한 전략 중에서 무엇을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는 전체 텍스트 맥락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설명하지 않은 전혀 또다른 번역전략을 여러분 스스로 발명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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