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인 비문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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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번역] 온라인레슨 시즌2: 단편소설 깊이 읽기

6월 첫째주/둘째주 뉴스레터로 발송한 내용 중 일부를 요약하여 블로그에 공유합니다.

The Story of An Hour

먼저 이 단편소설의 제목이 재미있죠. “story”라고 하는 것은 뭔가 서사가 담긴 이야기를 의미하는데, 그것이 단 한 시간 동안 일어났다는 것이니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어떤 역설적인 인상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시간 이야기”라는 번역 제목에서도 그런 역설이 느껴지시나요?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러한 미묘한 뉘앙스는 번역을 통해 그대로 옮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여러 제목을 궁리해봤지만, 이러한 뉘앙스까지 전달할 수 있는 번역은 찾을 수 없더군요.

이러한 의미의 손실은 번역과정에서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물론 손실된 의미를 다른 곳에서 보상하기도 합니다. 번역학에서는 이것을 “의미손실-보상 기법”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이러한 기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번역이 원작을 100퍼센트 재현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첫 문장부터 읽어보겠습니다.

Knowing that Mrs. Mallard was afflicted with a heart trouble, great care was taken to break to her as gently as possible the news of her husband’s death.

첫 문장이 만만치 않군요. 사실 독자는 Mrs. Mallard가 누군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더욱이 “knowing”의 행위주가 누구인지도 전혀 표시되어 있지도 않군요. 배경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장을 읽고 여기서 얻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석)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상황에 처합니다.

이것은 친구와 둘이서 대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친구가 대화에 낀 상황과 비슷합니다. 대화에 새롭게 참여한 친구는 지금까지 어떤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한 동안은 그 내용이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겠지요. 하지만 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대화에 새롭게 참여한 친구가 바로 독자죠.

단편소설의 첫 문장은 거의 모두 이러한 기능을 합니다. 즉, 배경지식을 생략한 채 이야기의 한 복판에서 진행되는 정보를 맨 먼저 제시하는 것입니다. 독자는 어떤 내용인지 몰라 혼란스럽기도 하고, 또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 장면을 이해하고 싶어 이야기를 읽어나가기 시작하죠. 이러한 전략은 짧은 분량으로 완결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아, 그리고 이 첫 문장은 문법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도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분사구문을 만드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부사절을 분사구문으로 바꾸는 방법

After he finished lunch, he went out for a walk.
Finishing lunch, he went out for a walk.

  1. 부사절의 접속사를 생략한다
  2. 부사절의 주어와 주절의 주어가 동일인인 경우에 부사절의 주어를 생략한다. 부사절의 주어와 주절의 주어가 다른 경우에는 부사절의 주어를 생략하지 않는다.
  3. 부사절의 동사를 현재분사로 바꾼다.

그런데 위의 문장을 보면, 분사구문의 생략된 행위자가 주절의 주어가… 아닙니다.

이처럼 분사 수식어구의 주어가 주절의 주어와 다를 경우에는 주어를 생략하면 뜻이 애매해집니다. 몇 가지 예문을 볼까요?

  1. * Having endured rain all week, the miserable weather on Saturday didn’t surprise us.
  2. * Known for her conservative views, we were not at all surprised when the Republican counsilwoman announced her candidacy for the General Assembly.
  3. * Knowing how much work I had to do, it was good of you to come and help.

위 예문들을 분석해볼까요?

  1. 일주일 동안 비가 내리는 상황을 견딘 것은 나쁜 날씨가 아닙니다.
  2. 보수적인 정치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우리가 아니죠.
  3. 내가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you인데, you가 나오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주어 자리에 오지는 않았네요.

이 문장들을 제대로 고쳐 쓴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1. Having endured rain all week, we weren’t surprised by the miserable weather on Saturday.
  2. We were not at all surprised when the Republican counsilwoman, known for her conservative views, announced her candidacy for the General Assembly.
  3. It was good of you to come and help when you learned how much work I had to do.

물론 분사구문의 주어가 주절의 주어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생략해도 상관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1. Speaking of old movies, have you seen Modern Times?
  2. Regarding your job interview, the supervisor called to change the time.

이런 분사구문은 사실, 주어를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전체를 수식하는 것들입니다. 또한 관용적으로 굳어진 표현들이죠. 하지만 어쨌든 이런 표현들은 수식의 일치를 벗어난 분사구문이기 때문에, 격식에서 벗어난 가벼운 인상을 줍니다.

분사구문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1*, 2*, 3*처럼 글을 쓴다고 해도 독자들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쨌든 구조적으로 어긋난 문장이기 때문에 독자는 이러한 문장들을 읽었을 때 다음과 같은 특별한 인상을 받습니다.

“의미가 모호하군.”
“명확하게 사고하지 못하는군.”

우리 역시 비문을 읽을 때 받는 느낌과 비슷하죠. 어쨌든 이런 문장이 소설 첫머리에 등장한다는 것은 화자의 혼란스러운 심리상태를 문장의 형태로 보여주는 효과적인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분사구문과 관련하여, 한국인들이 영작을 할 때 다음과 같은 형식의 글을 많이 씁니다.

 Concerning apples, Fuji is delicious.

이 문장은 화제어가 있는 한국어를 영어에 맞춰 그대로 옮긴 형태입니다 (“사과는 부사가 맛있지.”) 위 분사구문 설명을 보면 이 문장을 보고 원어민들이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 아시겠죠?

또한 이 문장은 말라드부인이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고 있다는 것인지, 또 그녀의 남편의 부고를 조심스럽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누구인지 행위주를 숨기는 목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소설의 첫머리에서 독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독자들은 혼란스럽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듯이 소설의 첫 문장은 이처럼 언제나 독자를 사건의 한 복판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합니다.

또 한가지 첫 번째 문장에서 눈 여겨 볼만한 것은 break의 목적어가 문미로 밀려나있다는 것입니다.

  • break the news of her husband’s death to her as gently as possible.
  • break to her as gently as possible the news of her husband’s death.

두 문장을 비교해보면,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이야깃거리가 되는 “남편의 부고”를 문장의 맨 끝에 둔 아랫문장이 훨씬 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두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보시면 어디에 힘을 주어 말하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순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어순과 문미초점의 원리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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