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역할을 최대한 축소하고 가부장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 또다른 장애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섹스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섹스를 최대한 좁은 영역 속으로 밀어넣는 방법을 선택한다. 구약은 한결같이 남편과 아내의 신성한 결합 이외의 모든 남녀관계를 혐오한다. 섹스에 대해서 말하는 것도 완전히 금지했으며, 이를 어기면 돌팔매로 처벌했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섹스에 어떠한 제한도 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종교의식에서는 섹스가 매우 중요한 의례 기능을 했다. 섹스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묘사하는 데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지금 시각으로 보아도 그리스의 항아리에 그려진 그림들은 포르노라고 분류해도 손색이 없다.

고대그리스만큼 성적 취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묘사한 문화는 인류역사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다채로운 섹스가 곳곳에서 행해지던 고대그리스의 일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이뤄낸 눈부신 철학과 문화적 업적들이 살펴보기에도 벅찼 정도로 넘쳐났기 때문일 것이다.
강간하는 신
유대인들의 주신(유일신) 야훼와 그리스의 주신 제우스는 섹스에 관한 태도에서 양극단을 상징한다. 야훼는 성적 충동을 전혀 내보이지 않으며, 인간여자를 임신시키지도 않는다. 정반대로 제우스는 하늘의 신들 가운데 가장 난잡하다. 제우스 앞에서는 어떤 신이든―악마든―절제할 줄 아는 모범생에 불과하다. 성욕에 불타는 제우스의 온갖 난동을 그리스인들은 은근히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야훼는 사랑의 전문가였지만 성욕은 전혀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반해 제우스는 사랑할 줄은 모르면서, 끊임없이 성욕만 채우려고 하는 난봉꾼이다. 제우스는 달콤한 말과 부드러운 행동으로 상대방을 유혹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상대방이 유혹에 꿈쩍도 하지 않으면 속임수를 쓰고, 그래도 안 넘어오면 힘으로 제압한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자면 제우스는 최악의 연쇄강간범으로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만 했을 것이다.

비교종교학적 관점에서 볼 때, 강간범을 주신으로 모신 종교는 그리스 밖에 없다. 신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했다가 감옥에 가거나 돌팔매질에 죽을 수 있다면, 그리스는 왜 그런 신을 섬긴 것일까? 제우스가 올림포스에서 비중이 적은 신일 뿐이라면 그나마 이해를 할 수 있을 테지만, 그는 팡테온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배자였다. 아름다운 젊은 여인들을 겁탈하는 데에만 정신팔려있는 듯 보이는 이 신이 최고 지위에 오른 것은 급박한 문화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성애의 시대
섹스를 자유롭게 즐기면서 가부장제를 강화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매우 기발한 방법으로 이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해낸다. 바로 문란한 섹스와 동성간 섹스를 장려한 것이다. 그리스는 동성애를 장려한 최초의 문명이다.
호메로스는 남성간의 사랑을 남녀간의 사랑보다 훨씬 고상하고 순수한 것이라고 찬양한다. 플라톤의 《향연》에서도 동성애는 주요 토론주제이었다.

동성애를 개방적으로 포용하는 사회는 출생률하락으로 인해 쇠퇴할 위험이 높아지지만, 한편으로 문화가 만개한다. 기원전 8세기에서 4세기까지 그리스는 그야말로 오늘날까지 어느 사회도 달성하지 못한 활기차고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이스라엘에서는 동성애가 절대 용납되지 않았다. 모세의 율법은 그것을 ‘망측한 짓abomination’이라고 규정한다.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는 뜻이다. 아이를 생산하지 않는 섹스를 모조리 금지하는 것은,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구축하기 애쓰는 신생소수민족에게 그나마 납득할 만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예술과 문학을 통해 동성애를 그토록 찬양함으로써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었을까?

끊임없이 지속된 살육과 전쟁으로 인해 남성의 사망률이 높은 상황에서도 그리스인들이 동성애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는 양성애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남자들은 결혼한 뒤에도 다른 여자는 물론 남자나 소년과도 쉬지 않고 바람을 피웠다. 처자식이 있어도, 남자들은 아내를 위해 정절을 바치지 않았다. 여자들은 자신이 남편의 유일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여자는 남자의 애정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여자와 어떻게 경쟁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하지만 경쟁상대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면 어떻게 할까? 그리스의 여자들은 심각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고대그리스에서 동성애와 양성애가 번성했던 이유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은 아직 없다. 이러한 풍습을 가진 문화는 인류역사상 고대그리스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할 대상도 없다. 어쨌든 동성애풍습이 극에 달한 시기에 그리스의 지적 탐구와 예술은 인류가 도달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에 도달했으며, 바로 그 시기를 거치면서 여신은 문화의 주변부로 완전히 추방당했다.
아테네에서 살아가는 여성들
위대한 사상의 보고 아테네는 인류에게 무수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그들은 미학의 가치를 최초로 논의했으며 그들의 미적 감각은 서양예술의 기준이 되었다. 이 도시는 또한 최초로 민주주의라는 실험을 펼쳤다. 그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아테네는 여자들이 살기에도 좋았을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아테네에서 여자들은 교육, 정부, 공공생활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아테네의 법률을 만든 솔론은 여자들에게 땅을 매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지 않았다. 구약과 마찬가지로 솔론의 법전은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로 간주한다. 아버지는 딸의 결혼을 파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예술의 뮤즈들은 모두 여자였지만 그들이 자매들에게 영감을 주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무수한 아테네의 예술작품 중 여자가 만든 것은 하나도 없다.
이에 반해 고난과 가혹함을 높은 가치로 떠받들던 스파르타에서는 의외로 남자와 여자가 매우 평등했다. 스파르타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교육하는 방식도 거의 같았다. 스파르타의 여자들은 짧은 치마를 즐겨입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또한 젖가슴을 아무렇지않게 드러내놓고 다녔다. 운동경기에 출전하여 마음껏 기량을 뽐내기도 했다. (이에 반해 아테네의 여인들은 발목까지 덮는 페플로스을 입었다.)

신화는 지배계급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전파된다. 그리스로마신화는 철처하게 여자의 지위와 역할, 여신의 가치를 폄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다. 강간과 무분별한 섹스와 동성애와 여성혐오가 곳곳에 배어있다. 이러한 성차별주의자들의 교리를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어릴적부터 아이들에게 읽히는 것은 과연 바람직할까? 이런 글을 읽는 여자아이들의 자존감은 위축되지 않을까? 남자아이들은 가부장제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더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되지는 않을까?
그리스문명과 히브리문명은 이후 서양문화의 근본이 되는 두 기둥이 되었지만, 수천 년 동안 (어쩌면 지금까지도) 계속 반목하고 대립하는 상극의 문화로 존재해왔다. 서양문화는 정반대의 극단적인 관념을 고집하는 완고한 ‘두 아버지’ 밑에서 자란 정신분열증을 앓는 외동아들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