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번영기와 교회개혁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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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co Toucan

십자군전쟁을 통해 예기치 않게 자신들의 뿌리를 찾은 유럽에는, 급속도로 문자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명이 태동한다. 암흑시대를 지배하던 구술문화/여성적 가치가 새롭게 개화된 문자문화/남성적 가치가 비교적 균형을 이루며 황금기가 펼쳐진다. 바로 이 시기(1000-1300년)를 유럽역사에서 중세번영기High Middle Age라고 한다.

2차 십자군전쟁, 14세기작품.

암흑에서 깨어난 유럽의 풍경

이 당시 유럽은 전반적으로 평화로웠다. 국경선은 유동적이었으며, 종교전쟁도 없었다. 유대인도 이방인이긴 하지만 중요한 공동체 일원으로 어울려 살았으며, 접경지대에서는 무슬림에게도 정중하게 예의를 지켰다. 학자들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의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들, 창조적인 사람들, 영적인 사람들, 총명하고 박식한 사람들, 그리고 대다수 여자들이 아무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였다.

전체 서양문화를 놓고 볼 때 사춘기에 비유할 수 있을 만큼 이 기간에는 격정이 있었다. 눈을 크게 뜬 호기심이 사상, 운동, 신념의 자유와 결합하면서 봄날의 아지랑이를 피워올렸다. 수많은 음유시인들이 여자를 찬미하는 기사도를 아름다운 노래로 표현했으며, 로맨스소설이 크게 유행했다. 마리아숭배는 여전히 인기가 높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경건하고 이타적인 종교적 이상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독일의 음유시인 프라우엔롭Frauenlob (가운데 악기를 켜는 사람). ‘여성에 대한 찬미’라는 뜻이다. from Codex Manesse

1209년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는 온화, 숭고, 청빈의 원칙에 기반한 프란치스코수도원을 세운다. 프란치스코수도원은 그 시대 신앙세계를 뒤덮었던 무수한 신비주의운동 중 하나였다. 마저리 켐프Margery Kempe, 로스비타Hrotsvitha, 나자렛의 베아트리체Beatrice, 마르그리트 두앙Marguerite d’Oingt, 마그데부르크의 메히트힐트Mechthild, 스웨덴의 비르기타Bridget, 몬탄의 도로시 등 무수한 여성 성직자들이 활발하게 신비주의운동을 펼쳤다. 민중들은 물론 교황도 이들의 활동을 인정하고 수용했다.

아시시의 성프란시스코San Francesco d’Assisi. 중세의 대표적인 신비주의 운동가. 프란치스코수도원을 설립한다.
계시vision을 받고 있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Hildegard von Bingen. 그녀가 하는 말을 부관이 받아적고 있다.

이 시대에 여자의 영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수녀원이 급속도로 늘어났지만, 수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만큼 많은 여자들이 수녀가 되고자 했다. 작센지역의 대수녀원장들은 방대한 영지를 관리했다. 몇몇 수녀원에서는 자체적으로 화폐를 주조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지역방언을 문자로 기록한 여류작가들의 글이 널리 읽혔다. 예컨대 1395년에서 1405년까지 10년 동안 프랑스문학을 대표하는 크리스틴 드 피장은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몇몇 수녀원들은 뛰어난 필사본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원탁의 기사들이 찾아온 성배를 제단에 놓고 여왕이 예배를 드리는 모습.

여왕이 백성을 다스렸고, 귀족부인들이 영지를 관리했으며, 품위있는 여자사업가들이 땅을 매매했고, 여자은행가들이 고차원적 금융거래를 했다. 일하는 여자들은 새로운 상업길드에서 경제적인 활동을 했으며, 지역의 관리를 선출하기 위한 투표를 시행하는 지역도 점점 늘어났는데 이러한 투표에도 여자들이 적극 참여했다. 심지어 여자가 전쟁에 나가 군대를 이끌기도 했다. 오랫동안 배제되어 왔던 종교의례에서도 여자들은 조용히 다양한 역할을 맡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자들이 일하고 배우는 것을 남자들이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교회-가부장-문자의 대대적 반격

그러던 중 교회 내부의 학식이 높고 고집 센 남자들로 이루어진 작은 집단이, 역동적인 중세의 문화의 중심을 여자가 아닌 남자로 옮겨가기 위한 모의를 시작한다. 1073년 교황에 오른 그레고리오 7세(1020-1085)는 교회 내부가 썩었다며 부패를 일소하겠다고 선포한다. 당시 가장 돈을 많이 내는 사람에게 성직을 파는 관행이 만연했는데, 교황은 성직매매를 ‘육체적 타락이 낳은 더러운 전염병’이라고 간주했다. 그리하여 교황은 성직자에게 독신규범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면서 전례가 없는 조치를 취한다. 아내와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 성직자에 대한 지원을 철회할 수 있는 권한을 평신도들에게 준 것이다.

Pope Gregory VII

그레고리오 7세의 포고령은 대대적인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평신도들은 교황의 명령에 불복하고 자신들의 교구의 사제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파리공의회에서 주교들은 교황의 개혁이 부당하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그레고리오 7세는 결국 무력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그는 외국의 귀족들을 끌어들여 기존의 주교들을 무력으로 몰아내주면 그 지역 땅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결혼한 성직자들은 결국 아내와 자식들과 결별하지 않으면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많은 성직자들이 생계를 위해, 또 몇몇 성직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위해 싸워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성직자의 아내와 자식들도 엄청난 고통 속에서 허우적댔다. 성직자로 남고자 하는 이들은 아내와 인연을 끊고 가족을 내쫓았다. 아이들은 하루아침에 사생아가 되었다. 이렇게 내쳐진 이들과 그 자식들은 기아, 매춘, 중노동, 살인, 자살의 공포에 직면해야만 했다.

교회개혁세력들은 또한 여성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당시 가장 열광적인 개혁파였던 다미아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사탄의 미끼, 남자의 영혼을 죽이는 독, 음란한 돼지들의 쾌락, 더러운 영혼이 거처하는 여인숙이다.

11세기 렌의 주교는 이렇게 썼다.

간교한 적[사탄]이 우리에게 퍼트린 셀 수 없이 많은 형상 가운데… 최악은 여자, 썩은 줄기, 사악한 뿌리, 타락한 샘… 꿀과 독이다.

이제 교황청의 복도는 남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유럽의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은 남성전용클럽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개혁은 또한 수도원의 풍경도 크게 바꿔놓았다. 당시에는 수사와 수녀가 함께 기거하는 수도원double monastery이 많았는데, 이런 수도원들은 모두 폐쇄되었고 남녀를 엄격하게 분리하는 클뤼니수도원과 시토수도원, 곧이어 등장하는 군대식 운영으로 유명한 도미니코수도원이 접수한다. 대수녀원장들은 모두 대수도원장 밑으로 편입되어 까다로운 통제를 받는다. 프란치스코수도원조차 여자를 가차없이 격리하는 데 동참한다. 시토수도원의 수도사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Bernard는 이런 말로 자신들의 정책을 옹호했다.

여자와 늘 함께 생활하면서 그녀와 섹스를 하지 않는 것은 죽은 자를 살리는 일보다 어려운 일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학 중 가장 오래된 볼로냐대학. 1088년 설립

그레고리오 7세는 교회 안에서 이성과 마주칠 일 없도록 깨끗이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문자를 교회운영의 중심으로 삼는 조치를 취하면서 유럽의 주요도시에 성당부속학교를 설립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옥스퍼드, 파리, 볼로냐, 피사, 하이델베르크 등에 성당학교들이 개설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학의 모태가 된다. 성당학교에는 성직자든 평신도든 누구나 다닐 수 있었지만, 단 여자는 신분을 막론하고 입학이 불가능했다.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은 단순히 여자들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중세번영기가 시작되면서 꽃피우기 시작한 지적 자유를 꺾어버렸다. 그는 기본적으로 모든 학문을 교회가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제계급이 문자를 독점하지 못하면 교회가 지배하는 사회체제는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당학교 학생들은 모두 가톨릭성직자가 입는 카속cassock을 입어야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대학 졸업식에서 입는 학사가운의 기원이다. 오른쪽은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입은 카속.

유럽을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로 완전히 바꿔버린 그레고리오 7세의 개혁은 막연한 조치가 아니라 개개인들의 운명을 바꿔놓는 매우 구체적인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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