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잠에 빠져있던 569년 아라비아반도의 건조한 고원에 자리잡은 먼지투성이 도시 메카에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탄생한다. 고아였던 그는 총명했지만 글을 배우지 못했다. 사막을 횡단하는 상단으로 일하는 삼촌을 따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상술을 금방 터득했다.
무함마드는 무수한 여행을 하는 와중에 유대인들과 영지주의 기독교도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는 이 두 집단의 단단한 결속을 몹시 부러워했다. 아랍인들에게는 볼 수 없는 속성이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이러한 영적인 굳건함이 그들이 믿는 성스러운 문헌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 두 집단의 믿음을 보면서 아랍인들이 처해있는 문맹, 우상숭배, 정치적 분열은 절망적일 만큼 시대에 뒤쳐진 것으로 보였다.
40살이 다가올 때 무함마드는 세속의 일을 등지고 메카에 있는 히라산 동굴에 들어가 이따금씩 오랜 시간 명상을 했다. 610년 어느 날 밤 홀로 동굴에 있을 때 그는 신의 현현을 체험한다.
내가 잠들어있는 동안, 낯선 남자가 글이 쓰여져있는 비단 천을 들고 나타나 내게 말했다. “읽어라.” 나는 “못 읽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비단 천으로 내 목을 조였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그러더니 나를 풀어주고는 다시 말했다. “읽어라!”… 그리하여 나는 큰소리로 읽었고, 마침내 남자는 나를 떠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그 글은 내 마음속에 새겨져있었다. 나는 길을 나섰다. 산을 내려오는 도중에 하늘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 무함마드야! 너는 알라의 메신저이며, 나는 대천사 지브릴이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체험을 주변사람들에게 전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믿었다. 무엇보다도 신에게 받았다는 계시의 말들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추종자들은 점점 불어났고, 그들 앞에서 계시를 암송했다. 소수였지만 글을 아는 사람들은 이 예언자의 독특한 시적 표현들을 견갑골과 양피지에 받아적는 ‘영리한’ 작업을 시작한다.

무함마드의 메시지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이었다. 알라는 지고하며 전지전능한 유일신으로 다른 신들, 특히 여신을 섬기는 것은 용납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여신을 버리는 대가로, 무함마드는 이전 종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매우 중요한 개념을 약속하는데, 바로 ‘사후의 삶’이다. 알라는 자신만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 낙원에 갈 수 있지만, 다른 신을 숭배하는 불신자들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알라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고 가르쳤다.
여자도 재산을 가질 수 있고, 적법한 직업을 가지고 소득을 관리할 수 있으며, 법적으로도 남자와 동등하다.
꾸란 4:4, 4: 32
무함마드 탄생 이전 아랍인들은 여러 신을 믿었다. 주요한 숭배의 대상 중 하나는 메카에 있는 카바라고 하는 커다란 정육면체 검은 돌이었다. 이곳은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아랍인들의 성지였다. 이 메카의 성소는 네 개의 석상이 둘러싸고 있는데, 하나만 남신이고 나머지 세 개는 모두 여신이었다.


무함마드 역시 이미지를 배척했지만 더 많은 개종자들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양보로서, 카바는 알라를 위한 성소라고 재정의함으로써 검은 돌에 입 을 맞추는 이슬람교 이전의 관습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슬람의 확장
아랍인들은 알라의 계시가 쓰여진 글을 경배했다. 무함마드는 일찍이 꾸란을 직접 읽는 이들은 알라가 각별히 눈여겨 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을 찾아 집을 떠나는 자는 하느님의 길을 걷는 것이다.
학자의 잉크는 순교자의 피보다 성스럽다.
그전까지는 문자를 익혀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던 베두인 사람들이 갑자기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깨어났다. 이슬람 전역에 학교가 문을 열었으며, 학교에서는 오로지 이 책 하나만 가르쳤다. 유일신을 찬양하는, 알파벳으로 쓰여진 책 “꾸란”은 아랍인들에게 단일한 목적을 안겨주었다.
새로운 종교적 열정은 그들 속에 잠자고 있던 호전적 특성을 일깨웠고, 무슬림들은 지구 끝까지 뻗어나갈 기세로 주변지역을 정복해나가면서 주변의 오랑캐들을 개종시키기 시작했다.
무슬림은 새롭게 정복한 지역 사람들에게 아주 단순한 선택권을 주었다. 참수냐 개종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자신의 머리를 내놓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또한 개종을 선택한 이들 중 상당수는 마음에 우러나는 자발적인 개종이었다. 많은 지역의 주민들이 망설임없이 단체로 이슬람에 귀의했다. 유럽 중부지역에서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에서 고민하던 다신교도들에게, 남쪽에서 밀려오는 이슬람교의 물결은 제3의 선택지가 되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유일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용맹한 아랍인들 편에 서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아랍인들의 새로운 신앙은 기존의 두 종교 기독교와 유대교보다 훨씬 뛰어난 것처럼 보였다. 초기 이슬람교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인 이유는, 위계적인 사제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민주적인 종교라는 점이다. 이슬람이 내세우는 기본교리는 ‘관용’과 ‘평등’이다. 의례도 매우 간소해 따르기 쉬웠다. 이슬람의 성직자 이맘은 다른 종교의 사제계급과 달리 결혼도 하고 가족도 꾸리고 세속적인 직업도 갖는 평신도에 불과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 귀의하면서, 글을 읽고자 하는 무슬림들의 욕망은 더욱 커져 간다. 이러한 흐름을 촉진하는 또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712년 아랍군이 중국의 비단길 길목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 사마르칸트를 점령하는데, 여기서 전리품으로 ‘종이’라는 진귀한 물건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들의 방언으로 쓴 신성한 경전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종이라는 매체가 결합하면서 마침내 이슬람세계에 황금시대가 펼쳐질 토대가 마련된다. 글을 쓰기 위해 희고 평평한 낙타의 견갑골을 모으는 수고를 할 필요가 사라졌다. 책은 곧 넘쳐나기 시작했고, 예배를 드리는 모스크는 곧 도서관이 되었다. 794년 처음 제지공장이 세워졌는데, 이후 100년이 지났을 때 바그다드에만 서점이 100곳 넘게 있었고 도서관도 수십 곳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슬람제국의 황금시대
또한 786년 칼리프의 자리에 오른 하룬 알 라시드 (766-809)는 이슬람세계의 세종대왕이었다. 학문에 정진한 현명한 통치자로서 그는 이슬람제국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이후 500년 동안 이슬람제국의 시, 과학, 의학, 수학, 건축, 철학은 마법의 양탄자 위에 올라탄 듯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 나갔다. 지식의 습득을 최고의 이상으로 여기는 너그러운 그들의 종교는 든든한 받침목이 되었다.
이슬람제국은 페르시아, 인도, 그리스, 로마 등 주변의 문화를 모두 받아들여 자신들의 말로 번역하고 집대성했다. 신학, 철학, 수학, 지리학, 천문학, 물리학, 의학, 화학, 문학, 건축 등 모든 학문이 꽃피웠다.
문맹의 유럽과 지적인 이슬람의 조우

학구적인 아랍인들과 무식한 유럽인들 사이에는 단단한 장벽이 놓여 있었다. 바로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경계였다. 이것을 깬 것이 바로 십자군운동이다. 1096년 첫 십자군원정이 시작되었을 때 서유럽인들은 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후레자식 같은 존재였다. 자신들의 선조들이 지중해연안에서 믿기지 않을 만큼 풍부한 고대문명을 달성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들의 출생기록은 그들이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생각한 무슬림들의 손에 있었다.
기독교도들이 이 성전에서 획득한 예상치 못한 전리품은, 바로 자신들의 뿌리를 찾게 된 것이었다. 유럽 전역에서 그리스와 히브리에 대한 관심이 치솟았다. 엄청난 논쟁과 더불어, 전에 없던 개방적 사고가 11-12세기 유럽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세속의 유럽이 마치 문자의 키스를 받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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