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관한 몇 가지 수다들

This article is written by

This article is published on

This article belongs to the category

To read this article you need time

3분

This article received readers’ responses

0

This article consists of keywords

이거 이거, 막 이렇게 길게 써도 되나? 그렇지만 나는 왕팬이니까, 그러니까, 이정도 쯤이야.^^

다음은 수업 중반에 썼던 중간평가 보고서다. 아무쪼록 자신의 새 길을 모색하는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작으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번역에 관한 몇 가지 수다들

번역에서 낯설게 읽기

누구나 자신의 첫인상을 가늠해 보기 쉽지 않은 것처럼, 자기가 쓴 글의 첫 맛을 살려 읽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내 글은 내 생각의 일부이므로 억지스럽거나 조악한 단어와 문장 자체로 읽히기보다는 표현되지 않은 의도와 경험, 그간의 사정까지 모두 포함해서 읽히기 때문이다. 지난한 창작 과정과 행간의 속내를 살뜰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내 글 자체에 대해 객관적인 인상을 직시하기 쉽지 않고, 그에 따라 냉철하고 혹독하게 성찰하기보다는 타고난 ‘팔자’에 안주하여 운명인 듯 받아들이기 십상이라는 뜻이다.

내 원고와 거리두기

아직 터무니 없는 수준이지만 번역을 공부하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과 방법에 대해 소개하자면, 나는 윤영삼 선생님이 늘 강조하는 무수한 내용 중에서도 Revising의 중요성, 그 중에서도 글쓰기와 글읽기의 기억체계(Memory System)가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둔다. 그래서 텍스트를 읽으며 곧바로 단어를 대입하듯 번역하지 않으려 애쓰며, 혹은 문장 대비 문장을 옮기듯 텍스트를 좇아 나가지 않으려 애쓴다. “직역은 오역”이라고 했듯, 거시적으로는 텍스트 전체의 메시지와 억양과 뉘앙스를 번역해야 하고, 미시적으로는 단어 형태와 문장구조에 따른 의미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하며 번역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초보인 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대충 해 놓고”라는 생각으로—그럼에도 간신히 버겁게—초벌번역을 마치고 나면, Revising을 할 때는 이미 익숙해진 초벌번역의 문장들이 내 시야에 들붙어서 도저히 그것을 떼어놓고 최소한 한 문단, 나아가 텍스트 전체를 조망하고 살필 여유가 없어지고 만다. 아무리 글을 읽고 또 읽어도 내 진짜 허점은 보이지 않는다. 문장호응이 괜찮은가? 띄어쓰기를 잘못 했나? 정도가 고작일 뿐.

그렇다 해도 내 문장들을 끊임 없이 의혹의 눈초리로 쳐다 보지 않으면 Revising에 실패하게 되고, 결국 번역이라기보다는 ‘해석’ 수준의 글을 최종 결과물로 내놓을 수밖에 없다. 내 문장들을 끊임 없이 의심하기 위해서는 나와 문장 사이 거리감이 중요하다. 눈동자에 들붙은 초벌번역 문장을 비정하게 떼어버리고, 한 단어, 한 문장을 넘어서는 좀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늠하게 하는 최소한의 시야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새롭게 읽기와 쓰기를 위한 훈련

하나마나 한 소리, 내 글을 잘 쓰려면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 하물며 번역을 잘 하려면 잘된 번역을 많이 읽어야 하고, ‘Revising’을 잘 하려면 좋은 글을 거울삼아 훈련해야 한다. 그래서 번역 과제를 해나가는 중간 중간 좋은 문장들을 많이 읽으려 (생각)하고, 번역서를 읽을 때 원문과 대조하면서 좀더 나은 번역을 고민해 보려 (애쓰기도) 한다. 그리고 좋은 글을 거울삼아 Revising을 훈련하는 일은 그나마 ‘생각’이나 ‘의도’에 그치지 않고 나름 실행에 옮기고 있는 부분인데, 윤영삼 선생님의 첨삭에 따라 ‘버전 3’ 원고를 완성해서 사이트에 게재한 뒤 윤영삼 선생님의 참고번역이 올라오면 그것에 견주어 내 원고를 다시 첨삭한다. 선생님의 문장과 내 문장을 비교하면서 선생님의 단어 선택, 조사 처리, 문장 배열 등을 자세히 뜯어보다 보면, 내 원고만 놓고 씨름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유용하고 구체적인 번역 기술을 많이 배우게 된다. 이 훈련에서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성과는 내 원고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아무리 거리를 두려고 애를 써도 보이지 않던 내 무심한 표현들, 무의식적인 문장 구성이 ‘잘 된 원고’와 오버랩되면서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여담

어느 정도까지 의역이 허용되며 어느 정도까지 원문을 각색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늘 나의 고민이다. 최대한 원문의 표현과 의미를 모두 살리고자 하는데, 표현을 살리면 의미가 죽고 의미를 살리면 표현이 죽는 경우가 흔하다. 여전히 한 문장 한 문장 대면할 때마다 고민스러운 부분이지만, Revising 훈련을 해 갈수록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계산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고정 불변의 원칙이야 있을 수 없겠지만 최소한의 기준이 생겼다고 할까.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Nominalization을 최대한 풀어쓰기, 행위자에게 주어 자리를, 행위자의 동작에 서술어 자리를 찾아주기, 모호하고 관념적인 어휘 대신 생생하게 연상 가능한 어휘 쓰기 등. 역시 하나마나 한 소리인가?

환절기다. 다른 말로 하면 감기의 계절이다. 두 살짜리 아들녀석 둘이 모두 감기에 걸렸다. 나한테 옮았다. 밤 12시 이후가 나의 번역 작업 시간인데, 녀석들이 아파 잠을 못 자는 통에, 아, 꼬였다.

6기 곽성혜


이 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워드프레스닷컴에서 웹사이트 또는 블로그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