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번역가가 되기 위한 마지막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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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든 운동이든, 모든 배움은 계단형으로 실력이 상승한다. 초반에는 계단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가고 나면 한없이 길어지는 정체기에 과연 다음 계단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럽고 그대로 포기하고 싶어진다. 몇 권의 책을 번역하고도 번역가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기만 했던 이유도, 에이전시에서 번역 의뢰가 꾸준히 이어지지 않았던 이유도 내가 계단을 올라서지 못하고 그저 그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컨트라베이스 번역캠프를 찾은 이유는 돌파구를 찾고 싶어서였다. 그럼으로써 번역서에 새겨진 내 이름 옆에 항상 따라붙었던 남편의 이름을 떨치고 온전한 번역가가 되고 싶어서였다. 20주가 지난 지금 생각하니, 참 야무진 꿈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선생님이 훌륭해도 결과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달려있는 것인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처음에는 버전 1,2,3으로 이어지는 반복되는 첨삭이 참 부담스럽고 어떻게든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려고 애썼던 것 같은데, 어느새 강의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그저 과제물 완성에만 급급해서 형식적으로 고친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든다.

문득 아마존에 관한 내용을 다룬 첫 강의가 생각난다. 버전 3을 올린 뒤, 선생님이 버전 3에 대한 코멘트를 또 다시 올려놓은 것을 보고 도대체 첨삭의 끝이 어디인가하며 기함했더랬다. 그것도 모자라 선생님이 올린 번역과 자신의 번역을 비교 발표하는 특별과제로 이어졌는데, 지금에 와서야 내가 꾸준히 그런 식으로 성실하게 과제를 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실력을 갖게 되었을 텐데, 하며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어쨌든 20주간 배운 내용이 전부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면 거짓말이고, 아무리 선생님이 이게 최선이라고 가르쳐주어도 어떤 부분은 내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체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내 번역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초벌번역에 이은 Revising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의식적으로 뇌를 환기하지 않으면 Editing에 머물게 되며 내가 쓴 문장과 거리를 두고 고쳐 쓰는 것이 번역의 완성도 향상에 필수적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내가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문장에 담겨있는 의미를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샅샅이 파헤치는 선생님의 번역을 보면서 번역을 대하는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번역은 노가다처럼 기계적인 작업이지만, 때로는 단어 하나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구글을 뒤지고 며칠에 걸쳐 도서관을 찾아다니는 치열함과 어떤 내용이든 막힘없이 번역하기 위해 배경지식을 쌓아가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컨트라베이스 번역캠프는 내가 번역가로 홀로 서기 위해 마지막으로 받은 외부의 도움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내가 꿈꿨던 온전한 번역가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다 보면 조금씩 목표에 다가설 수 있으리라 믿는다.

7기 노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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