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체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의 한 봉우리를 일컫는 말이다. 박범신 작가의 《촐라체》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컨트라베이스 번역캠프를 다니면서도 고스란히 느꼈다. 히말라야에서 사는 사람들은 5000미터가 넘는 산 정도는 ‘마운틴’이라고 부르지 않고 ‘힐’이라고 부른다. 나는 번역캠프를 다니면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5000미터 마운틴을 넘었다. 늘 500미터 구릉지만 넘던 내가 고작 1000미터 산을 보고 5000미터의 에베레스트 산 봉우리로 오해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5개월이라는 캠프기간이 뭔가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켜 그 변화를 완성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일 수 있지만 5000미터의 산을 마운틴이라고 부르지 않고 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도전정신을 일깨우고 변화의 중턱을 향해 다가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섬세하고 예리한’ 원정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번역 ‘공부’라는 것을 (양적으로만) 참 ‘많이’ 했다. 대학원이며 아카데미를 찾아다니며 내 번역에 고쳐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은 일찍이 깨달았지만 고치는 방법은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캠프에서는 ‘섬세하고 예리한’ 대장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내 머릿속에 정확히 그려 넣을 수 있었다.
언젠가 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목숨을 걸고 한판승부를 벌여야 할 ‘궁극의 산’을 만나게 될 그 때를 위해 나는 ‘지독한’ 준비를 할 작정이다. 지독한 준비라 함은 지금하고 있는 번역일을 잘 해내는 것도 포함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할 생각이다. 번역가가 되려면 독서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어서 나름 이 책 저 책 넘나들며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독서하는 방법조차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천천히 사고하면서 작가의 사고 흐름을 따라가며 읽은 것이 아니라 정말 ‘글자’만 읽었던 것 같다. 블로그에 끼적여놓은 내 독후감을 보면 책의 줄거리는 하나도 없고 내가 느낀 감정만 무수하게 기록돼있다. 작가가 원래 의도하는 바와는 달리 나의 ‘오해’일지도 모르는 감정들만. 그래서 앞으로는 좀 더 ‘이성적인’ 독서를 할 계획이다. 더디고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문장과 단락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완결성을 철저히 따져가며 읽을 것이다. ‘통일성’과 ‘일관성’이 내 번역문장과 단락에서도 잘 살아나기를 ‘지독히’ 간절하게 바라면서 말이다. (여담이자 아주 중요한 말, 윤영삼 선생님이 빨갛게 첨삭해 놓은 번역글을 20주간 분석하다 보면 ‘이성적인 읽기와 글쓰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나는 카르마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박범신은 카르마를 춤추는 업業이라고 했다. 춤을 춘다는 것은 역동성을 의미하므로, 業이라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다. 나는 설령 주어진 운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해도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번역캠프에 참여하면서 번역은 나의 業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했지만 번역캠프가 끝나는 오늘, 나는 業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조금은 ‘낙관적인’ 생각으로 ‘번역가’가 되기 위한 에베레스트 원정을 떠나보려고 한다.
If I have lost confidence in myself, I have the universe against me.
We can control our destiny through hard work. We have our hands and We are going to work our ass off, and we are going to initiate and create some sort of change in our life!!!!
7기 이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