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질하기와 번역하기: 나는 [갈등하는 번역]을 왜 썼는가?

This article is published on

This article belongs to the category

,

To read this article you need time

3분

This article received readers’ responses

0

This article consists of keywords

이미 발명한 바퀴를 또 발명할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번역에 관한 책을 썼고 또 많은 이들이 읽었습니다. 뭐 이정도면 번역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번역이라는 작업은 기본적으로 언어—두 개의 언어—를 다루는 작업이죠. 사실 한 가지 언어만 잘 하는 데에도 상당히 오랜 시간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하물며 두 개의 언어, 더욱이 ‘글’을 읽고 쓰는 일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요? 이것은 우리 모두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함에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번역은, 그것만 제대로 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서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버거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번역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테크닉’을 습득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죠. 대명사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동태는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 번역과정에서 쉽게 혼동할 수 있는 어휘들은 무엇인지, 또한 어떻게 하면 ‘한국어답게’ 쓸 수 있는지 밑줄을 치며 익혀야 합니다.

자, 어쨌든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둬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면 머지 않아 번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출판사와 계약을 할 수 있고 책을 출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런 과정을 거쳐 번역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두 권 번역했다고 해서 모두 ‘번역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운이 좋으면 누구나 한두 권 출판사와 계약을 해서 책을 낼 수는 있겠지만, 그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죠. (물론 번역을 계속 하는 경우에도, 기대만큼 좋은 처우나 보상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번역가’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비유하자면, 번역은 악기연주와 비슷합니다. 어떤 아이가 피아노를 잘 치면 음악대학에 입학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음악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과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실력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바로, 작품을 해석하고 그것을 자기만의 기교로 표현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이죠. 이런 능력은 피아노학원 열심히 다닌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좀더 실질적인 비유를 들자면, 번역은 목공과도 비슷합니다. 톱질을 잘 하고 망치질을 잘한다고 해서 뛰어난 목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좋은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되려면 우선 톱질을 잘하고 망치질을 잘 해야겠지만 어떤 가구를 만들어야 하는지, 그 기능과 쓰임새가 어떤지, 사람들의 행동패턴이 어떤지 알지 못하면 그 기술들은 무용지물이 되겠지요.

어떻게 톱질을 하면 보기좋은 결과물이 나오는가?
어떻게 하면 적은 힘을 들여 효율적으로 톱질을 할 수 있을까?
어느 십장 밑에 가면 돈을 더 받고 톱질을 할 수 있는가?

여기서 ‘톱질’을 ‘번역’으로 ‘십장’을 ‘출판사나 번역에이전시’로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면, 그것은 번역노동을 하겠다는 것이지, ‘번역가’가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갈등하는 번역]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제가 보기에 지금까지 번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책들이 ‘어떻게 하면 톱질을 잘 하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또 무수한 온라인 번역카페에 들어가보면 대부분 ‘어느 십장 밑에 가면 돈을 더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글로만 떠들석하기 때문입니다.

번역은 왜 하는가? 그것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 그러한 관점에서 텍스트, 문장, 단어에 어떻게 접근하고 이해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학습을 해나아가야 하는가 설명하는 책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알려주는 것이 오늘날 상황에서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1년이 넘는 시간을 들여 책을 쓴 것입니다.

혹시 ‘먹고살기도 바쁜 상황에 한가하고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번역가 지망생들을 가르쳐본 경험에 비춰볼 때, 이러한 관점과 접근방식은 매우 실질적인 번역능력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 목적의식이 뚜렷할수록 빨리 배우는 법이거든요.

이 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남겨주세요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워드프레스닷컴에서 웹사이트 또는 블로그 만들기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