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로서 번역: 갈등과 중재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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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번역 온라인레슨 6

이 레슨은 지난 1월 21일 저녁 알라딘 인문학스터디 [번역현상: 번역가, 텍스트, 구겨진 글자]의 첫 번째 강좌 [행위로서 번역: 갈등과 중재의 예술]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강의는 서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진행되었는데요, 참가정원은 30명이었지만 실제로는 10분 정도 더 오시는 바람에 출판사와 알라딘에서 나온 분들께서 간의의자를 나르느라 고생 좀 하셨습니다. 그날은 또 체감온도 영하20도에 육박하는 매우 추운날이었기에, 강좌를 준비한 저로서는 발걸음을 하신 분들의 뜨거운 열기를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갈등하는 번역]의 토대가 된 ‘기능주의 번역이론'(덧붙여 글쓰기이론)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책에서는 실무적인 노하우를 중심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이러한 번역방법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인 내용은 아마도 이 자리에서 처음 접하는 독자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어쨌든 [갈등하는 번역]을 좀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유용한 배경지식을 공유하는 의미있는 자리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강의는 2시간 정도 진행되었으며, 30분 정도 질의응답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의는 크게 4단계 소주제로 진행되었는데, 간략하게 핵심적인 내용만 이 글을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직역과 의역 구분은 무의미하다.

로마시대로부터 20세기 말까지, 아니 지금 현재까지도 많은 분들이 번역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직역’과 ‘의역’이라는 기준을 사용하는데, 이는 번역을 평가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번역을 하는 번역가에게도 아무런 영감을 주지 못합니다.

두 번째, 번역은 커뮤니케이션 행위다.

1980년대 등장한 번역행위이론과 스코포스이론은 번역을 ‘의사소통행위’로 규정하며 번역의 목적은 ‘번역행위자들의 목적’이라고 규정합니다. 기존 번역이론들은 번역을 텍스트 중심 관점으로 접근한 반면, 기능주의 번역이론은 번역을 행위 중심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한 마디로 번역학의 패러다임쉬프트라고 할 수 있지요.

세 번째, 커뮤니케이션으로서 번역

구체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메시지가 어떻게 인코딩/디코딩되는지, 이러한 상황에서 다양한 참여자들이 메시지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또 어떤 경우에 번역이 발생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모형은 발신자와 수신자가 협력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번역이 왜 가상독자를 바꾸는 작업인지, 글을 쓰는 사람이 왜 독자를 고려해야 하는지 많은 영감을 제공합니다.

네 번째, 커뮤니케이션 기능의 발현 – 스타일

예컨대 누군가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길을 막고 있는 사람에게 “잠시 길 좀 비켜주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발화의 형식이 발화의 목적과 잘 어울려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의미만 전달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죠. 그 형식이 내용과 어울려야 합니다. 아니, 형식이 곧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여기서 발화의 형식은 곧 ‘스타일’을 뜻합니다.

그래서 좋은 글과 나쁜 글은 스타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무수한 글쓰기와 번역과 관련한 책들이 다양한 글쓰기규칙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규칙들을 일일이 적용하려다가, 초보자들은 자칫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잊어버릴 위험이 크다는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쉽게 말해 어떤 어휘, 어떤 표현, 어떤 문형을 선택할 것인지 끊임없이 판단하는 일입니다. 제대로 ‘선택’하면 좋은 글이 되고 잘못 ‘선택’하면 나쁜 글이 되죠.

이러한 선택에서 고려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어떤  의미를 어떤 감정으로 표현할 것인가”, 또 “그 발화를 통해 독자에게서 어떤 효과를 얻고자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온갖 글쓰기 규칙을 무작정 쫓다보면 자칫 본말이 전도될 위험이 커집니다(의미와 맥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특정한 어휘나 표현을 남발하는 것이죠). 실제로 번역을 조금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쓸 때 반드시 지켜야하는 실질적인 규칙과 이런저런 사람들이 제시하는 신화적인 규칙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실질적인 규칙이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으로, 쉽게 말해 문법과 맞춤법입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옷을 착용하는 기본적인 사용법)

  • 화제어에는 구정보 또는 구정보에 준하는 정보가 들어가야 한다.
  • 주어는 생략할 수 있다
  • 모든 절은 서술어로 끝맺어야 한다
  • 어미에는 반드시 높임법 표지가 들어가야 한다
  • 행위자의 유생성에 따라 동사의 타동성이 달라진다
  • 행위의 의도성에 따라 능동/피동 동사가 선택된다

반면, 다음과 같은 규칙들은 신화적인 규칙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규칙처럼 보이지만 전혀 규칙이 아니라는 뜻이죠. (남들의 시선)

  • 한국어다움을 드러내는 고유어 표현을 우선적으로 쓰라
  • 이러저러한 번역투 문장을 쓰지마라
  • 영어의 수동태는 무조건 능동태로 바꿔라
  • 문장의 길이를 맞춰라
  • 간결하게 써라

그렇다고 해서 명확하고 효과적인 의미전달에 도움이 되는, 즉 좋은 스타일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지침을 들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법)

  • ‘당신’을 최대한 쓰지 말라
  • 명사구를 길게 늘이지 말라
  • ‘의’를 최대한 억제하라
  • 부사로 쓸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부사로 사용하라
  • 병렬구문을 명확하게 처리하라
  • 익숙한 정보는 앞에, 새로운 정보는 뒤에 둬라
  • 텍스트의 일관성을 유지하라(cohesion/ coherence)

이러한 지침이 유용한 것은 문법적인 규칙(grammatical rule) 때문이 아니라 문체적인 효과(stylistic effect) 때문입니다. 이 지침들이 문체상에 어떤 차이를 초래하는지는 [갈등하는 번역]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강의의 주요내용이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번역작업프로필(번역작업의뢰서)를 작성하는 법”을 간략하게 소개하였고요. 뒤 이어 30분 가량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번역가라면 우선 원문에서 스타일을 인지할 줄 알아야겠죠? 원문의 의미와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번역문에서 제대로 된 스타일을 선택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한국어도 아닌 외국어에서 스타일을 읽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번역가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올라야 할 산이겠지요.

스타일의 역사와 영문 스타일 입문은 [번역현상: 번역가, 텍스트, 구겨진 글자] 두 번째 특강에서 라성일 선생님이 소개해주셨습니다. 이 강좌의 주요내용은 다음주 온라인레슨에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이 강의는 1월 26일 저녁 국제청년센터 저자초청특강에서 또 한 번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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