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하는 번역 온라인레슨 7
이 레슨은 지난 1월 28일 저녁 알라딘 인문학스터디 [번역현상: 번역가, 텍스트, 구겨진 글자]의 두 번째 강좌 [글자들의 향연: 오래되고 낯선 문체]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두 번째 강의 역시 서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다행이도 간의의자까지 날라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30석 강의실이 거의 빈틈 꽉 들어찾습니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지난 첫 시간에 예고한 대로, 스타일의 역사와 실제 스타일을 적용하여 분석하는 기법을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영어공부를 한다고 하면, 대개 단어나 문법을 학습하거나 독해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글의 스타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생소한 일이고, 그래서 이런 수업을 이곳에서 처음 들어보신 분들도 많을셨을 겁니다.
강의는 예정시간을 초과하여 2시간 30분 이상 진행되었는데요… 라성일 선생님이 준비해온 내용이 많아 질의응답도 갖지 못한 채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사실 너무 많은 분량을 준비해오셔서 준비해온 강의자료를 3분의 1도 보지 못하고 끝냈습니다. 이날 강의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드립니다.
Do You Like Sentences?
저마다 좋아하는 문학작품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아이가 애니 딜라드의 작품을 읽고 너무 심취하여 그녀와 같은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애니 딜라드가 교수로 있는 대학 문예창작과에 진학했죠. 정말 그 아이는, 꿈에 그리던 애니 딜라드 선생의 강의를 직접 듣게 됩니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그 아이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애니 딜라드에게 달려가 자신이 얼마나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하는지, 또 자신도 선생님과 같은 작가가 얼마나 되고 싶은지 이야기합니다. 그 아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애니 딜라드는 딱 한 마디 묻습니다.
Do you like Sentences?
뜻밖의 질문에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고 합니다. 애니 딜라드는 그 질문을 남기고 자리를 떴습니다.
우리가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 작품이 자신의 어떤 심리적 위안을 주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순히 스토리가 좋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직접 쓰고 싶어한다면, 작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바로 ‘문장’을 좋아해야 합니다. 문장의 미묘한 차이들, 그런 차이를 분별하고 이해하고 음미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스타일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스타일
스타일은 원래 ‘삶의 양식’을 의미했습니다. 스타일은 개개인의 됨됨이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죠. 그래서 사람마다 고유한 스타일이 있으며, 그 사람의 개성이 말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사학이 발전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는 스타일이 ‘말’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축소됩니다. 수사학은 곧 말을 잘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수사학의 발전은 개인의 됨됨이와 무관하게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에 따라 스타일 역시 이제는 ‘삶의 양식’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리스 수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스타일의 덕목은 바로 Saphe(Clarity, 명확성)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최고의 덕목이죠.)
Attic Muse and Asian Harlot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를 통일하고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까지 지배하게 되면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까지 지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드넓은 지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피지배문화에 속한 사람들에게 그리스어를 보급하여 커뮤니케이션의 장벽을 없애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서 그리스 본토에서는 모든 글을 간결하고 단순하게 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공문서는 반드시 이러한 스타일을 지켜야 했지요. 고대의 현란한 문장은 사라지고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이 지배했습니다. 이것을 Atticism(아테네식 글쓰기)이고 합니다.
문제는 아시아(오늘날 소아시아, 터키) 지방의 관리들이 작성한 문서들은 그렇게 간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리스어는 외국어였음에도 현란한 문체를 쓸 수 있었죠. 이것을 Asianism(아시아식 글쓰기)이라고 합니다.
머지않아 마케도니아왕국이 몰락하고 로마가 그 뒤를 이어받습니다. 로마는 원칙적으로 그리스전통을 그대로 물려받기를 원했지만, 뛰어난 아시아 지방의 관리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고, 결국 이 두 문체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문학은 물론 서양문학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작가들은 한결같이 Asianism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구사하는 문장들은 크게 Periodic Sentence와 Cumulative Sentence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 두 문장의 차이는 예문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If you’re the kind of person who likes to cry at the movies, you’ll love Casablanca.
You’ll love Casablanca if you’re the kind of person who likes to cry at movies.
간단히 말해서 Periodic Sentence는 주절로 끝을 내는 문형을 의미하고 Cumulative Sentence는 주절로 시작하는 문형을 말합니다. 이런 문형의 차이는 단순히 겉모습의 차이가 아니라 정보배열의 차이이며 의도하는 ‘클라이맥스’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작가들마다 선호하는 문형이 있는데, 예컨대 헨리 제임스는 Periodic Sentence를 주로 사용한 반면 캐서린 맨스필드는 Cumulative Sentence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강의내용은 여기까지만 소개하겠습니다. 그 다음 이어진 강의는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Cathedral 등 실제 여러 작품 속 문장들을 읽어보면서 텍스트에서 스타일을 읽어내는 방법을 연습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글로써 소개하기가 어렵네요. 핵심은, 스타일을 읽어낼 줄 알아야 저자가 그러한 선택을 한 의도를 추론해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글을 쓰고 번역할 때에도 그런 스타일을 구사할 줄 알아야 하겠죠. (물론 이 강의에서는 영어문체를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어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스타일에 대해 더욱 자세한 강의를 듣고 싶은 분들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라성일 선생님의 Rhetorical Writing 수업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영어를 이해하는 눈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될 것입니다. Rhetorical Writing: 미국식 영작문 작성을 위한 전략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