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복 입고 요가하기: 문법요소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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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번역 온라인레슨 14

이 레슨은 [갈등하는 번역 7. 말은 진정한 의미가 아닐 수 있다: 문법범주와 어휘범주 / 8.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 문법의 기초]에서 다루는 내용을 설명합니다.

문법은 번역자의 몸을 꼼짝할 수 없게 옭아매는 구속복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유능한 번역자가 되려면 우선 두 언어의 문법을 잘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지 명확하게 인지해야 합니다.

예컨대 영어는 의미를 표현하려면 행위자(주어)를 먼저 제시하고 그 다음 행위(동사)를 반드시 제시해야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무엇을 먼저 말하든 모든 문장은 행위(동사)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영어에서는 명사의 경우 셀 수 있는지 없는지, 또 셀 수 있는 것이면 몇 개인지(단수/복수), 또한 이것이 새로운 정보인지 기존에 제시되었던 정보인지(정관사/부정관사) 밝혀야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그런 정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영어에서는 행위가 언제 발생했는지(시제), 완료되었는지 진행 중인지(상) 반드시 표시해야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표시하는 기준이 영어보다 엄격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한국어에서는 화자와 청자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하지만(공손성) 영어에서는 이런 정보를 전혀 요구하지 않습니다. (공손성politeness이란, 말의 내용과 무관하게 화자와 청자의 서열과 친소를 표시하는 문법장치로 흔히 ‘높임법’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문법의 차이는 번역자를 깊은 고뇌의 늪에 빠뜨리는 주요한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문법에는 어떤 요소들이 있을까요? 문법은 크게 형태론과 통사론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형태론morphology: 단어의 형태와 구조의 변화. 예컨대 man/men, child/children, car/cars처럼 수를 구분하거나 is/was처럼 시제를 구분하는 단어의 변화가 형태론에 속한다. 이러한 형태론적 구조 속에 언어가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정보”가 담긴다.
  • 통사론syntax: 단어들이 놓이는 순서. 명사, 동사, 부사와 같은 단어의 기본적인 품사들과 주어, 술어, 보어와 같은 문장 속 기능의 관계가 통사론에 속한다. 이러한 통사론적 구조에 의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구성방식”이 결정된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곧 형태구조와 통사구조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풀어쓰자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말이죠. 영어를 중심으로 다양한 언어의 문법요소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형태론적 요소: 기본적으로 담아야 하는 정보

수number

사물의 개수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다. 영어는 하나와 둘 이상을 반드시 구분하여 표기한다. 영어보다 더 수에 집착하는 언어도 있는데 예컨대 피지어Fijian는 하나, 둘, 셋, 셋 이상을 구분하여 표기한다. 한국어에서 수는 문법요소가 아니다.

성gender

“남성이냐 여성이냐” 하는 정보도 인류가 중요하게 여기는 정보였기 때문에 이를 반드시 표기하는 언어가 많다. 예컨대 프랑스어는 fils/fille(아들/딸) chat/chatte(수고양이/암고양이)뿐만 아니라 magazine(잡지) construction(건물)과 같은 명사까지도 일일이 남녀를 구분하여 표기한다. 영어는 이처럼 까다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 구분해서 표기한다. actor/actress(남배우/여배우) bull/cow(수소/암소) manager/manageress (남관리인/여관리인)와 같이 많은 단어들이 남녀구분을 하며, 특히 인칭대명사의 경우에는 he/she(그 남자/그 여자)처럼 남녀구분을 철저하게 한다. 한국어의 경우에는 가족과 친족 호칭을 빼고 다른 곳에서는 남녀를 그다지 구분하지 않는다.성을 구별하는 문법체계는 오늘날 성차별적 요소로 인식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영어에서는 성별이 불확실한 3인칭단수를 he/him으로 지칭했지만 이러한 관습은 오늘날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수정되었다. (Political Correctness)

  • he→ s/he, he or she, they, she
  • him→ him or her, them, her

3인칭 단수를 ‘they/them’으로 받는 것을 ‘singular they/them‘이라고 한다. 이 경우 ‘수’의 일치가 깨진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3인칭 단수를 무조건 she/her로 쓰는 작가들도 있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인해 문법규칙들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반명사들도 이제는 성별이 중립적인 형태로 바꿔쓴다.

  • chairman, spokesman, businessman → chairperson, spokesperson, businessperson

인칭person

대화참여자의 관계 또한 중요한 정보로 표시하는 언어가 많다. 영어에서는 말하는 자신(1인칭), 말하는 상대(2인칭),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3인칭)로 구분해서 표시한다. 영어에서는 인칭이 지칭reference으로만 사용되지만 많은 언어에서 인칭은 지칭과 함께 공손성politeness을 표시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공손성이란 친밀감이나 존경, 격식을 표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어에서 you를 vous와 tu로 나누어 표기한다. 한국어에서는 (놀랍게도) 지칭기능만을 하는 인칭이 없다! 인칭은 문법요소가 아니지만 공손성은 문법요소다.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주인공 부부의 대화에서 호칭이 어떻게 변형되는지 살펴보자. (1997년 YBM 시사영어사 번역본.)

LINDA:
ⓐYou’ve got too much on the ball to worry about.ⓐ당신은 걱정거리가 너무 많아요.ⓐ you→당신
WILLY:
ⓑYou’re ⓒmy foundation and ⓒmy support, ⓓLinda.ⓓ여보, ⓒ내가 지금껏 흔들리지 않고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신 덕이오.ⓑ you→당신
ⓒ my→나
ⓓ Linda→여보
WILLY:
No, there’s more people now.아냐, 지금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어. 
LINDA:
ⓖI don’t think there’s more people. ⓗI think–더 많은 것은 아녜요. ⓗ제 생각엔–ⓖ I→∅
ⓗ I→저

아내와 남편 모두 2인칭은 ‘당신’이라고 번역되지만, 1인칭은 남편은 ‘나’, 아내는 ‘저’로 번역된다. 물론 상대방을 높이거나 자신을 낮춰야 하는 경우 인칭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문화에서는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이다(ⓓ).

시제tense/양상aspect

시간의 흐름은 인간의 기본적인 관심사다. 영어에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하고 양상은 완결, 미완결, 계속, 순간으로 구분한다. 한국어는 시제와 양상표기가 영어만큼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영어의 시간 구분은 3단계다: 과거—현재—미래

발리어의 시간구분은 5단계다: 어제이전과거—오늘과거—현재—오늘미래—내일이후미래

중국어의 시간구분은 1단계다: 오로지 현재. (부사를 덧붙여 시간을 표시한다.)

  • He is working in Beijing. 他现在在北京工作
  • He was working in Beijing. 他当时在北京工作

한국어의 시간구분은 2단계다: 과거—현재

한국어/중국어/말레이어 등은 시간을 한번 설정해두면 다시 설정하기 전까지는 그 시간이 지속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말을 끊었다. 그는 설렁탕을 그릇째 받들고 머리를 숙여 천천히 불어가면서 국물을 마셨다. 나도 말없이 떠넣는다. 국그릇을 잡고 있는 봉한의 손가락들은 새의 발처럼 보인다. 그 손톱 끝에 가늘게 낀 때가 선명하다.

– 황석영 <오래된 정원>에서

Hopi어의 3시제: 호피어의 시제는 시간을 표시하지 않는다.

  • 영원한 진리표현: “태양은 동그랗다.”
  • 이미 알고 있거나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실표현 “파리는 프랑스의 수도이다.”
  • 불확실한 사실표현: “그가 내일 올 것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언어의 시제와 상은 시간만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호피어처럼 진리표현이나 습관, 반복 들을 표시하는 기능을 함께 수행한다.

통사론적 요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태voice

메시지를 전달할 때, 행위자를 강조할 것인지 피행위자를 강조할 것인지 또는 행위자를 드러낼 것인지 말 것인지 먼저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한 결정에 따라 메시지를 조작해야 하는데, 영어에서는 이것을 능동태와 수동태라는 방식으로 코딩한다. 한국어는 굳이 수동태를 사용하지 않아도 행위자를 쉽게 숨길 수 있으며, 강조점도 쉽게 바꿀 수 있다.

  • Nigel Mansell opened the Mansell Hall in 1986.
  • The Mansell Hall was opened in 1986.
  • The Mansell Hall was opened by Nigel Mansell in 1986.

수동구문을 만드는 주요목적은 행위자 없는 절을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세번째 예문은 잘 쓰이지 않는다.

언어마다 행위자 없는 절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터키어에서 행위자를 가리는 방법은 수동태 밖에 방법이 없다.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에는 수동태가 있지만 주로 재귀reflexive구문을 많이 쓴다.

  • He introduce himself to me.
  • The opportunity made itself available. (= The opportunity was made available.)

수동태는 문체적 선택, 또는 특정 사용역에서 관습적 선택이기도 하다. (ex. 학술논문 등)

일본어, 중국어, 베트남어, 타이어에서 수동구조, 또는 수동구조와 비슷한 구조는 대개 ‘불운한’ 사건을 말할 때 사용된다.

  • I was rained on.
  • I was died on by my father.

수동구조를 능동구조로 옮기거나 능동구조를 수동구조로 옮길 때 선형배열의 변화가 생기지 않는지 주의해야 한다. 절의 정보량, 메시지의 초점에 심각한 변형을 가져올 수 있다.

어순word order

의미전달을 어순에 의존하는 정도는 언어마다 다르다. 영어나 중국어는 철저하게 어순에 의존하여 의미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한국어처럼 격굴절체계를 지닌 언어는 어순의 제약이 거의 없다. 어순이 자유로운 언어는 메시지를 다양하게 조직할 수 있기 때문에 강조, 대조, 감정, 판단, 의도를 훨씬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다. 영어는 어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아무 의미 없는 가주어 “it”이나 유도부사 “there”와 같은 place-holder를 사용하기도 한다.

영어, 중국어는 문장요소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John saw Boris. =  Ivan videl Borisa / Borisa videl Ivan.
(English)                                   (Russian: 격굴절 -a)

위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러시아어는 어순을 거꾸로 뒤집어도 똑같은 문장이 된다. 그것은 격굴절case reflection로 문장성분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격굴절이 발달할수록 어순의 제약은 사라진다.
어순은 좀 더 복잡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각각의 절이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어순이 다르면 정보전달 순서, 즉 정보구조information structure가 달라집니다. 또한 정보구조는 표층결속성cohesion과 심층결속성coherence과 같은 의미의 결합관계를 만들어내고 이는 거대한 하나의 텍스트text를 만들어냅니다. 문법의 차이가 텍스트구조의 차이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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