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활용하는 기본적인 선동기법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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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정치인들의 언어

가치판단어휘의 문제는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물론 논증 자체가 타당하다면, 독자의 감정을 어느 정도 자극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때로는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킬 정도로 독자의 감정을 자극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청중이나 독자의 감정을 자극할 목적으로 빈정대고 냉소하는 어휘를 마구 내뱉는 행동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 그런 태도가 공론장에 스며드는 순간, 많은 이들의 이성적 사고는 마비되고 생산적인 논의는 멈추기 때문이다. 그런 언어가 공론장에서 유통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유권자의 환심을 얻기 위해 오늘날 많은 정치인들이 이러한 표현들을 끊임없이 유포하고 다니며 정치혐오증을 부추긴다.

  • 상대후보에 대한 대중의 적대감을 부추기기 위해서, 상대후보를 ‘좌파’ ‘거짓말쟁이’ ‘범죄자’ “약탈자’라고 지칭한다.
  • 상대방을 언급할 때는 반드시 ‘극단적인’ ‘급진적인’ ‘부패한’ ‘위선적인’ ‘위태로운’ ‘위험한’ ‘무능한’ ‘거짓’ ‘선동’ ‘기만’ 같은 수식어를 붙이고, 자신을 언급할 때는 ‘비전있는’ ‘공정한’ ‘도덕적인’ ‘진실한’ ‘용기있는’ ‘원칙에 충실한’과 같은 말을 붙인다.
  •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국가’ ‘가족’ ‘상식’ ‘의무’라는 단어를 쓰고, 상대후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탐욕’ ‘배신’ ‘독단’이라는 단어를 쓰며 비난한다.

이러한 전략은 ‘스스로 중립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착각)하는 유권자들의 체면의식을 자극함으로써,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적극적으로 투표하도록 독려하고 상대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움츠려들고 기권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히틀러
더 이상 저들의 기만과 거짓 선동에 속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집권연장과 국민약탈을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국민과 함께 정권교체를 이루어낼 것입니다.—어느 대선후보의 출마선언문 중

하지만 이러한 감정적 어휘사용은 정치적인 선전이나 ‘수사학적 표현’을 넘어서, 민주적인 담화의 기초를 흔들고 결국 우리 시민사회의 토대를 훼손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할 내용을 감정적인 호소로 대체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담화 전체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내듯이, 자신의 이익만 달성하면 그만이라는 냉소적인 언어가 판치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사려깊은 논증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부정직한 언어를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강렬하고 자극적인 언어를 쓸수록 설득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언어가 나올 때마다 사려깊은 독자들은 귀를 닫고 달아나버린다. 대중은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뉘앙스가 담긴 언어는, 독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편향된 사고를 하도록 부추긴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강렬한 언어를 쓰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이 자신을 멀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감정을 자극하여 사람들을 선동하는 3가지 기법

감정을 자극하여 사람들을 선동할 때 정치인들이 자주 활용하는 언어사용기법 세 가지를 살펴보자.

흑백논리 언어

‘친기업’에 동의하지 않으면 무조건 ‘반기업’이고, ‘반북’이 아니면 무조건 ‘친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흑백논리를 좀더 교묘하게 적용할 수도 있는데, 예컨대 자신의 관점에 대해서 ‘진실한’ ‘정상적인’ ‘합리적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상대방의 관점을 ‘겉과 속이 다른’ ‘제정신이 아닌’ ‘비이성적인’이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악당으로 몰아붙이는 이러한 ‘2분법적 논리’는 감정을 자극하여 이성을 마비시킨다. 생산적인 토론은 사라지고 진흙탕 싸움만 남는다.

주어를 바꿔서 관점 조작하기

기자들은 시장을 끝까지 캐물어 결국 원하는 정보를 얻어냈다. 시장의 친구가 운영하는 기업은 시와 계약을 따낸 대가로 선거자금으로 1억 원이 넘는 돈을 제공했다.

시장은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에 못 이겨 결국 숨기려 하던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시장은 친구가 운영하는 기업으로부터 1억 원이 넘는 선거자금을 받고 시와 계약을 따낼 수 있게 해주었다.

윗문장은 기자와 기업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진술하는 반면, 아랫문장은 시장에 초점을 맞춰 진술한다. ‘무엇이 더 진실 같아 보이는가?’ 하지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가 진실이라면 다른 것도 진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물어야 하는 것은 ‘논증의 목적에 부합하는 진술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글쓴이는 어떤 행위자에게 책임의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가? 시장인가 언론인가?”

우리는 주어자리에 등장하는 행위자가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글 솜씨 좋은 사람들은 문장의 주어를 조작함으로써 독자들의 관점을 통제한다. 독자들은 이러한 조작과 통제가 말과 글 속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다.

글을 읽어 나가는 동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글쓴이의 의도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한다. 그러한 관점을 갖게 된 이유도 깨닫지 못하기에, 자기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비유적 시나리오를 대입하여 관점 조작하기

언어를 사용하여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극적인 방식은 비유적인 시나리오를 풀어내는 것이다. 비유는 단순히 추상적 개념을 구상화하는 것을 넘어,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꾸밈으로써 잘못된 이해로 이끄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컨대 경찰관들이 마약단속작전을 펼치다 엉뚱한 아파트에 들어가 무고한 시민을 총으로 쏘는 사고를 저질렀다. 다음날 경찰청 대변인이 이렇게 말했다.

마약과 벌이는 전쟁은 소풍이 아닙니다. 전쟁에는 사상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고한 아이들을 공격하는 적과 싸우는 것을 멈출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헤로인과 코카인이라는 독재자에 절대 굴복할 수 없습니다.

물론, 실제 전쟁에서는 무장군인들이 민간인을 죽이기도 한다. 하지만 경찰업무를 군사작전과 같다고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처럼 대중의 생각을 잘못된 방향으로 왜곡하고 조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은유가 자주 사용된다. (거꾸로 은유는 화자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교통사고입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우리는 지금 가치판단어휘를 사용하거나 주어를 조작하거나 은유를 사용하여 감정을 통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가치를 배제하고, 주어를 선택하지 않고, 은유를 이용하지 않고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자리에서 말을 하든어휘나 표현을 하나하나 민감하게 인식하고 선택하라는 것이다. 잘못된 어휘나 표현을 선택하는 것은 독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까지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프레임전쟁: 자신에게 유리한 단어로 문제를 진술하라

논쟁적인 주장을 펼치고자 할 때는 문제의 틀을 짤 때부터 어떤 가치를 반영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예컨대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가 금지할 것인가 문제를 놓고 맞붙은 찬반양측이 ‘안락사’를 진술하는 방식을 보자.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살할 권리의사가 환자를 죽이지 못하도록 막을 국가의 의무
품위 있게 삶을 마칠 권리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
개인의 신체적 선택의 존엄성생명의 존엄성

법정이나 언론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진술하느냐에 따라 한쪽은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고 다른 한쪽은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국가의 의무’를 선택한다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품위’를 져버린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선택의 존엄성’을 선택한다면 ‘생명의 존엄성’은 무시한다고 비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뿌리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서로 내세우는 가치가 모두 고상하고 자명한 경우, 문제를 정의하는 이름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프레임으로 문제를 진술하고 이를 채택하도록 하는 데 성공한다면 싸움은 사실상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포퓰리스트 populist

1890년대 미국에 Populist Party가 등장하면서 populist라는 말도 처음 등장했다. 거대자본가의 이해에 맞서 농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을 표방한 Populist Party는 나중에는 도시의 노동자계급과도 손을 잡았다.

포퓰리즘은 일관된 정치이념이나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일반대중의 권리/지혜/덕목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며 이들에게 표를 얻어 권력을 쟁취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포퓰리스트 정당은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여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편가르기를 한다. 주로 이주민이나 타인종을 공개적으로 공격하여 사회의 갈등을 유발하고 거기서 표를 긁어모은다. 종교와 결탁하는 것도 서슴지 않으며, 앞뒤가 모순된 반지성적인 주장도 거리낌없이 내세운다. 이들은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아무 망설임없이 넘나든다.

포퓰리스트들의 한 가지 변치않는 특징은, 부자와 권력자들에 맞서 평균임금을 받는 서민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고, 국제문제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포퓰리스트는 한마디로 사회적 차원의 “기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권력을 잡은 나라는 사회적 분열로 인해 상당한 혼란을 겪으며 그로 인해 엄청난 비용을 치룬다. 일단, 범죄율이 치솟고 후진국의 늪에 빠지고 전쟁위기에 봉착한다.

이 글은 논증의 탄생과 스타일레슨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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