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인간의 아기는 다른 동물의 새끼들과 달리 스스로 몸을 가누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진화의 결과, 다른 동물에게는 지극히 사소한 ‘출산’이라는 행위가 생명을 위협하는 고통이 되고 말았다. 포유동물 중에서 출산으로 인해 죽는 암컷의 비중은, 인간이 독보적으로 높다. 출산과정에서 무수한 여자들이 죽어갔으며, 무사히 출산을 했다고 하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더나아가 초기에 수컷들은 섹스와 출산 사이의 연관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결과 몸도 가누지 못하는 새끼를 오랜 시간 곁에 두고 키워야 하는 ‘양육’이라는 무거운 짐은 오롯이 여자들이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실제로 20세기 초까지도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 트로브리안드Trobrianders 부족은 섹스가 출산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했다고 한다.
성별에 따라 분화되기 시작한 인류의 진화
이처럼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은 결국 남자와 여자의 삶과 운명을 극적으로 갈라놓는 결과를 낳았다. 뇌의 확장이라는 인류의 진화는 출산과 양육이라는 짐을 여자에게 안겨주었고, 이로써 남자와 여자의 생존전략은 극적으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출산과 양육이 별다른 위험요인이 되지 않는 동물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인류가 땅에 내려와 고기를 주식으로 삼게 되면서 성적인 행동에도 변화가 생긴다. 침팬지나 비비를 관찰하면 수컷이 사냥에 성공하여 고기를 뜯고 있을 때 암컷들이 주변에 몰려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 수컷이 고기를 나눠주는 상대는 거의 예외없이 발정난 암컷이다. 수컷은 고기를 주는 댓가로 암컷에게서 섹스를 얻는 것이다.

발정은 임신할 수 있는 상태로 몸이 변하는 생리적 현상이다. 생식기가 풀어오르며 페로몬 냄새를 풍겨 자신이 발정났다는 것을 수컷에게 알리고 성욕을 자극한다. 발정기는 주기적으로 찾아와 며칠 동안 지속된다. 이에 반해 수컷은 언제든 교미를 할 수 있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발정을 오래 유지하는 암컷이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는 것은 당연했다. 마침내 진화를 거친 끝에 발정기가 사라진 암컷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1년 365일 언제든 발정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월경을 하든 임신을 하든 언제나 섹스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진화는 수컷사냥꾼과 흥정할 수 있는 막강한 무기를 암컷들에게 선사했다.

물론 이러한 진화는 수컷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특정한 기간에만 발정하는 포유류나 영장류들은 대부분 집단에서 가장 힘이 쎈 수컷, 즉 알파메일이 발정난 암컷들을 모조리 독차지한다. 나머지 수컷들은 번식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발정기가 사라지면서 서열이 낮은 수컷도 암컷과 섹스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발정기의 소멸은,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혁명적 변화를 몰고온다. 발정이 사라졌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섹스와 재생산이 분리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섹스가 번식을 위한 행위가 아닌 쾌락을 위한 행위로 자리잡은 것이다.
초월적 존재와 영적인 존재
그런데 여자들에게 발정기가 사라지면서 예상치 못한 생리현상이 나타났다. 바로 28일마다 자궁 안쪽에서 많은 양의 피가 쏟아져나오는 ’월경’이 찾아온 것이다.
물론 다른 동물에게도 월경이 있지만 인간만큼 자주 찾아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오는 피도 많지 않다. 또한 피가 나와도 다시 핥아먹기 때문에 철분이 거의 손실되지 않는다.

월경으로 인해 여자들은 매월 다량의 철분이 몸에서 빠져나간다. 더욱이 출산할 때는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나오기 때문에 철분결핍으로 인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실제로, 근대 이전, 여자들의 사망원인 1위가 출산이었다. 남자는 특별히 철분을 보충할 필요가 없지만, 여자는 철분을 지속적으로 반드시 보충해줘야 한다.
문제는 철분이 야채에는 거의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브로콜리, 시금치, 콩 같은 야채에는 철분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그나마 추운 지방에서는 구경하기 힘들다.
뭐니뭐니해도 철분이 풍부한 음식은 고기다. 생존하기 위해 여자들은 고기를 먹어야 한다. 고기를 얻어야만 하는 상황은, 수컷사냥꾼들에게서 더욱 성적 매력을 발산해야 할 동기가 되었다. 이러한 성적인 자극에 남자들의 성욕은 더욱 불타올랐고, 남자들을 더더욱 사냥터로 내달렸다.
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냥감은 죽지 않기 위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든다. 고기를 얻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남자가 끊임없이 고기를 가져다준다면, 그것은 곧 잠재적인 짝짓기 대상으로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가 되었다. 용기는 수컷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사냥만 잘 하면 암컷의 환심을 쉽게 살 수 있었으나, 진화가 거듭되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암컷이 짝을 고르는 기준은 갈수록 까다로워졌기에 그에 따라 수컷도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진화는 월경을 낳았고, 월경은 남자들에게 목숨을 걸고 사냥에 나서도록 부추기는 강력한 추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결혼이라고 부르는 남녀간의 결합도 이러한 원시적 거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남자들은 자신의 몸을 불살라서라도 목표와 의미와 임무를 달성하고자 하는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갔으며, 여자들은 집단 전반의 행복을 도모하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내적이고 ‘영적인 존재’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