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종교개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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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co Toucan

1517년 10월 31일 정오, 무명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가 교황의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는 95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의 한 교회 문에 게시한다. 이 사소한 행동이 역사를 바꾸는 종교분열의 출발점이 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 시기 프로테스탄트운동이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유럽에 새롭게 보급된 인쇄기술이었다. 프로테스탄트는 설교문과 팸플릿을 빠르게 인쇄하여 곳곳에 퍼뜨렸는데, 그 속도를 가톨릭교회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사실, 프로테스탄트혁명의 핵심에는 바로 알파벳이 있었다. 신성한 책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누구에게 주어야 할까? 가톨릭교회는 라틴어를 아는 소수의 고위성직자들만이 성서를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황의 말은 곧 최종적인 선고였다. 중세교회는 신약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아무리 독실한 신자라고 해도 성경을 주지 않았다. 성서필사본은 수도사의 책상에 쇠사슬로 묶어놓거나 캐비닛 안에 넣고 잠갔다.

성서를 이처럼 관리하다보니 서품을 받은 성직자만이 하늘나라로 인도할 수 있다는 교회의 주장이 통했던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은 여전히 진리였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르틴 루터가 주창한 프로테스탄트의 핵심교리는, 개인과 하느님 사이에 누구도 끼어들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도라면 누구나 성서를 직접 읽어야 한다. 책을 읽는 고독한 행위가 그 자체로 하느님과 직접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모든 사람이 성직자”라고 선언한다. 누구나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성서를 읽고 해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루터는 더 나아가 무수한 이미지와 조각상으로 채워진 교회의 화려한 의례를 반대한다. 수천 년 간 이어져 내려온 “문자 대 이미지” 갈등이 다시 종교개혁의 핵심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사실 종교개혁이 내건 핵심모토는 ‘성경으로 돌아가자’였지만 실질적으로 그 운동의 본질은 ‘이미지 대 문자’가 되어버렸다.

준비되지 않은 혁명가

루터는 ‘교황의 무오류성’을,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문자의 무오류성’으로 대체한다. 형식적으로는 개개인의 해석의 자유를 보장했지만, 그가 늘 좋아하고 강조했던 성경구절은 대부분 자비롭고 애정어린 하느님이 아니라 복수심에 불타는 야훼였다. 신약의 복음서보다, 분노에 찬 구약의 문장들을 중시했다.

루터가 신약에서 특히 좋아하던 구절은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오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였다(로마서1:17). 그는 이 짧은 구절을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소용이 없고, 오로지 믿음만이 구원을 안겨준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루터는 마리아 신앙, 면죄부, 연옥, 성인, 교회법, 교황의 권위, 제례를 집전하는 사제의 권한을 인정하지 않았다. 성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소중하게 받들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설’ 역시 성경에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과 예정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우리 인간은 누구나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대다수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지옥에 떨어질 운명이 결정되어있다고 주장한다. 이중에서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구원받는데, 이러한 선택 역시 천지창조 이전에 하느님이 이미 정해 놓은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착한 일을 한들 악한 일을 한들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천국 갈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의 원죄론과 구원예정설은 개신교의 핵심교리가 된다.

루터는 인간 내면에 고유한 악이 존재한다고 확신했다. 아무리 고귀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악이 언제나 선을 능가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이성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매도했다.

이성은 믿음의 가장 큰 적이다… 이성은 악마에게 기쁨을 주는 창녀다. 옴과 나병이 득시글거리는 이 창녀는 발로 밟아 죽여야 한다. 그녀와 그녀의 지혜는… 그녀의 얼굴에 똥을 던지고… 세례를 베푼다고 속여 익사시켜야 한다.

Martin Luther, The Table Talk, item 353

그래서 루터는 스콜라철학도 경멸한다. “교활하고 독단에 차있는 저주받은 이교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너무나 많이 의존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루터는 성서와 모순된다는 이유만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면에 마귀witch와 악령은 존재한다고 믿었다. 더 나아가 모든 자연현상은 하느님과 악마의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부패한 바티칸을 개혁할 인물로 떠오른 루터를 향해 당시 많은 휴머니스트들은 처음에 상당한 갈채를 보냈지만 점차 드러나는 그의 반이성적 논리에 크게 충격을 받고 실망한다. 그의 납득하기 어려운 기이한 성서해석과 신학적 관점이 상당히 조잡하고 허술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지식인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루터의 예정설은 실제로 심각한 사회현상을 초래했다. 어떤 젊은이는 자신의 형의 목을 베고는 법정에서 자신의 범죄는 하느님에 의해 예정되어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대학의 논리학교수는 사소한 집안문제로 다투다가 아내를 몽둥이로 때려죽인 다음 자랑스럽게 외쳤다.

이제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졌도다.

루터의 아버지는 작센안할트주 아이슬레빈에서 광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교회의 타락에 몹시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성직자제도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발심이 있었다. 그리하여 성직자에게 결혼을 금지하는 가톨릭규범도 뒤집는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가족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있다.

우선, 다른 이들을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정결해야 합니다. 선량한 양심으로 미혼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하지만 스스로 자제하며 정숙하게 살 수 없다면, 아내를 취할 수 있게 하세요. 신은 상처(성욕)에 바를 수 있는 파스(결혼)를 주셨습니다.

Martin Luther, The Table Talk, item 715
카테리네 폰 보라 Catherine von Bora, 루터의 부인.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섹스를 죄라고 생각했으며, 결혼한 부부 사이의 섹스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결혼한 부부 사이라면 “하느님은 그 죄를 좀 봐주신다”라고 말한다.

루터는 자연을 극도로 싫어했다. 도시를 벗어나면 악마에게 홀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우박, 천둥, 홍수 같은 자연적 현상들은 모두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숲, 물, 들판, 어두운 습지에는 무수한 악마들이 사람들을 해치기 위해 득실거린다… 짙은 먹구름 속에도 악마가 숨어있다.

W.E.H.Lecky, History of Rationalism in Europe, 1:61-62
잠들어 있는 여자와 섹스를 하여 임신을 시키는 악마 인큐버스Incubus

교황청의 종교재판에 줄곧 위협을 받던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전체주의적 관행을 비판하고 공격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말년에는 정작 자신이 성마르고 편협한 사람으로 변해 가톨릭교회보다 훨씬 극단적이고 단호한 고집불통이 되었다는 것이다.

잠자는 남자를 유혹하여 정액을 받아가는 악마 서큐버스Succubus. 원래 여신이다. Lilith by John Collier, 1887

그를 따르던 열성적인 프로테스탄트들은 커다란 망치, 곡괭이를 들고 다니며 수시로 성상을 부수고 성화를 난도질하고 제단 뒤의 벽장식을 훼손했다. 이런 것들을 지키려하는 사제나 교구의 신도들은 돌팔매질을 당하고 두들겨맞았다. 화가나 조각가들은 마을에서 쫓겨났다.

초창기 프로테스탄트교회는 대부분 가톨릭교회를 개조하여 만들었다. 조각상, 십자가, 성화 등을 모두 없애고 그림이 그려진 천정과 벽에 온통 하얀 칠을 하여 마치 휑한 동굴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다채롭고 화려한 가톨릭미사는 성서를 통독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루터가 살아있는 동안 그가 번역한 독일어 신약은 10만 부 이상 팔렸다. 당시 문맹이 상당히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놀라운 수치다. 95조 반박문을 붙여 놓은 지 5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에라스무스는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루터의 책이 어디서나… 어떤 언어로나 눈에 띄는군. 그에게 영향받지 않은 사람은 찾기 힘들 정도로 대단해.

염세적인 세상을 꿈꾼 원리주의자

1509년 프랑스 느아용의 독실한 가톨릭신자 집안에서 태어난 장 칼뱅Jean Calvin은 법률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중 루터의 설교문을 읽고 큰 충격을 받는다. 이후 그는 성서를 면밀히 탐독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집안의 신앙을 버린다. 1535년 26살에 칼뱅은 《기독교강요》를 집필한다. 칼뱅은 평생에 걸쳐 이 책을 개정하였고, 그 최종판은 오늘날 개신교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책으로 평가받는다.

장 칼뱅 John Calvin, by Titian

칼뱅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과 예정론을 그대로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루터보다 더 극단적으로 밀고 나갔다. 하느님의 정의에서 일찌기 벗어나버린 인간은, 사악하고 삐뚤어지고 비열하고 불순하고 부정한 것 외에는 상상할 수도 희망할 수도 계획할 수도 없는 존재일 뿐이다. 이타주의, 공유, 우호적 협력처럼 가끔 선해 보이는 행동을 한다고 해도, 인간의 영혼은 근본적으로 위선과 거짓과 사악함의 족쇄에 묶여 있기 때문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나약한 피조물들은 두려움 속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을 바치는 것 외에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다.

칼뱅이 제시한 교리에는 독창적인 내용은 거의 없다. 유대교와 가톨릭에서 가장 가혹한 개념만 가져다 교리를 만들었을 뿐이다. 유대교 예언자들이 지혜와 조화를 강조한 가르침은 대부분 배제하였고, 온유하고 여성적인 가톨릭의 이미지, 의례, 성찬 같은 것도 전부 부정했다. 칼뱅은 자신의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전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가장 좋은 일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슬퍼서 울고 장례식 때는 기뻐서 운다.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 1, Book 3, Chap 9, 4:781

1542년 칼뱅은 새로운 교회를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교회규율》을 발표한다. 이 책에서 그는 목사, 집사, 장로와 같은 위계질서를 설계하고 이러한 직위는 모두 남자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구상은 장로교, 퓨리턴, 위그노, 필그림 등 개혁교회를 만드는 기본적인 청사진이 되었고, 오늘날 개신교회의 기본적인 구조가 되었다.

루터와 칼뱅의 가장 뚜렷한 차이는, 루터는 세례받은 기독교도는 누구나 성서를 해석해낼 수 있다고 믿었지만 칼뱅은 그러한 능력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칼뱅은 성서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박식한 남자엘리트에게만 있다고 믿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은 현세의 법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는 하늘의 법을 실행하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고 믿었다. 철저한 정교일치사회를 주창한 것이다.

칼뱅의 주장은 ‘왕권보다 교황권이 우위에 있다’는 기존 가톨릭의 주장에서 교황권을 장로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초기 칼뱅교회의 장로들은 신자들의 삶을 거의 절대적으로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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