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절반을 지워버린 유럽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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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co Toucan

엑소더스의 행렬 와중에 스페인을 떠난 또 다른 배 한 척이 있었으니,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끄는 항해선이었다. 콜럼버스는 이 항해를 통해 장차 스페인에 어마어마한 신대륙의 부를 가져다준다. 여기에도 상당한 역설이 숨어있는데, 오늘날 연구에 따르면 콜럼버스 역시 유대인 혈통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양쪽 두 대양으로 고립되어있던 신대륙은 다른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이국적이고 다채로운 종교, 언어, 지혜를 축적해온 상태였다. 상당히 많은 부족들이 여전히 사냥·채집단계에 머물러있었으나, 농경·가축단계에 들어선 부족도 있었다.

특히 북아메리카 북동부에 위치한 이로쿼이연맹은 수백만킬로미터 초원에 펼쳐져있는 수천 개의 작은 부족들로 이루어진 연맹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의 정치체제는 매우 효율적이면서도 세련된 것이었고, 이들의 많은 법규와 국가운영방식은 오늘날 미국헌법의 뼈대가 되었다.

남아메리카에는 최고의 건축술을 통달한 잉카가 있었다. 그들은 현대의 전문가들도 풀지 못하는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이미 푼 첨단문명을 이룩하고 있었다. 마야의 웅장한 유적에 새겨져있는 그림문자들은 그들이 얼마나 세련된 문화를 즐겼는지 보여준다. 별자리를 묘사한 아즈텍의 테이블을 보면 고도의 수학이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자가 있었던 아즈텍, 마야, 잉카는 가부장적인 질서가 지배했지만, 문자가 없는 문화들은 전반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남녀평등을 유지했다. 예컨대 북아메리카평원에 살던 원주민들 중에는 추장을 나이든 여자들끼리 모여 선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상 거의 모든 원주민들이 여자를 존경했으며, 다양한 형태로 ‘위대한 어머니’를 섬겼다.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변함없는 믿음이 그들의 기본관념 속에 박혀있었다.

유럽인들이 처음 찾아왔을 때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땅을 찾아온 낯선 탐험가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며 친절을 베풀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미망과 일신교라는 광기에 홀려있던 유럽인들은 그러한 호의를 받고도 수천 년 만에 재회한 자신들의 형제자매들을 미개한 야만인으로 단정했다.

물론 이러한 판단을 아주 쉽게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 것은 바로 ‘그들이 기독교도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작 “문명화”되었다고 자부하는 그들은 바로 그 시간에도 자신들의 땅에서 사람의 사지를 찢고 불태워 죽이는 야만적인 행위를 하느라 모두 미쳐있었다.

학살, 그리고

곧이어 인류역사상 전례없는 대규모학살이 벌어진다. 1492년 남북아메리카 모두 합쳐 8,000만 명 이상 원주민이 살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부터 300년 동안 ‘탐험’, ‘정복’, ‘식민지개간’, ‘정착’, ‘개척’ 등 온갖 명분으로 들이닥친 유럽인들에 의해 원주민들은 대부분 몰살당한다. 오늘날 원주민들의 수는 대략 1,0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원주민 대다수는 홍역이나 천연두처럼 구세계가 몰고 온 낯선 질병으로 사망했지만, 많은 수가 농장에서 노예로 일하다 굶어죽거나 맞아죽었다. 또는 반짝이는 금속을 홀린 듯 쫓아다니다 총에 맞아죽기도 했다. 유럽인들은 저항하는 원주민을 매우 가혹하게 처벌했다.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도 사람들 보는 앞에서 남자는 성기나 팔, 다리를 잘랐고, 여자는 가슴을 도려냈다.

몇몇 성직자들의 눈에도 백인들은 악마의 현신으로 보였다. 어떤 성직자는 원주민에게, 아이를 낳는 것은 백인악마들에게 새로운 노예를 선사하는 일에 지나지 않으니 아기를 낳지 말라고 설교했다. 스페인사람들은 특히 혹독하게 원주민을 다루기로 유명했다. 이들이 부리는 노예 중에 자살한 원주민만 수천 명에 달했다.

유럽인들은 오염되지 않은 신대륙의 자연을 굴복시키고 정복해야 할 미개한 적으로 간주했을 뿐이다. 그들은 때묻지 않은 순결한 자연을, 그리고 원주민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강간했다.

원주민들에게서는 배울 게 없다는 자만심에, 유럽인들은 이들 문화의 잔재를 모조리 파괴한다. 그리고 그들을 개종시킬 생각만 했다. 침략자들이 대대적으로 휩쓸고 간 뒤 곧바로 “선교사”라는 사람들이 들어와 원주민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면 “신성한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휴머니스트 몽테뉴는 신대륙에 대한 글을 읽고 나서 〈식인종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쓴다.

그 나라[원주민들의 아메리카]에 관한 글을 아무리 읽어봐도 거기서 야만적이거나 미개한 것을 나는 하나도 찾아낼 수 없었다. 우리와 공통점이 없다는 것을 야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몽테뉴는 이 글에서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는 것과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고문하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야만적인 행위냐고 묻는다. 늘 유쾌하고 행복하게, 법 없이도 평화롭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아메리카원주민들이 유럽인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지적하며 원주민을 학살하는 식민지개척자들을 혹독하게 비난한다.

아메리카의 무수히 아름다운 마을들이 약탈당하고 폐허가 되었다. 수많은 나라가 파괴되고 무너졌다. 셀 수 없이 많은 무고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성별, 지위, 나이와 무관하게 무참히 학살당하고 유린당했다. 세상에서 가장 풍요롭고 아름답고 훌륭한 곳을 고작 진주와 후추를 거래하기 위해서 훼손하고 더럽히고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 피도 눈물도 없는 승리여, 아, 비열한 정복자들이여!

Edward Dowden, Michel de Montaigne, 144

Cannibal 식인종/ 식인의

쿠바가 위치한 카리브Carib(캐러비안) 바다를 스페인사람들은 Canibales라고 불렀는데, 이 지역에 사는 부족들이 식인을 한다는 소문이 유럽에 퍼지면서 ‘cannibal(캐니벌)’이 식인종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인류역사상 식인풍습은 대부분 극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만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하다. 고기를 마음껏 먹는 축제 Carnival(카니발CARN: 고기)과는 어원이 다른 말이다.

인쇄기술의 발명과 더불어 확산된 종교적 광풍에 휩싸인 16세기 유럽이 아닌 다른 시기 또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면 어떠했을까? 역사의 흐름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대왕은 인도의 드라비다, 트라키아의 스키타이와도 만나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들은 아메리카원주민들 못지않게 매우 “이국적인” 사람들이었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은 새로운 지역을 정복하더라도 그 지역의 종교를 말살하거나 원주민들을 붙잡아 노예로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면 어떠했을까? 그들을 몰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고 문화를 말살하기는커녕 그들을 예우하며 동맹을 맺고 무역을 활성화했을 것이다. 실제로 카이사르는 북유럽 오지에서 마주친 온통 시퍼런 물감을 뒤집어 쓴 켈트Celts와 픽트Picts라는 공포스러운 ‘야만족’에게 이런 정책을 취했다. 유럽에서 날뛰던 야만인들에 비하면 아메리카원주민들은 그야말로 우아한 신사들이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는 탁월한 통찰력과 경계없는 호기심과 관대함으로 이민족의 문화를 탐구하고 기록한 헤로도토스 같은 위대한 인물이 존재했지만, 2000년 뒤 이들의 후손들이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는 헤로도토스 같은 인물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California genocide 캘리포니아 대학살. 1846-73. 캘리포니아를 개척하기 위해 미국정부는 27년 동안 원주민 1만 6,000명을 학살하였다.

코카서스인들이 저지른 인종학살은 한 손에는 성경, 다른 한 손에는 총을 든 기독교문화에서 기인한다. 문제는 “성스러운 책”을 섬기는 이들의 행위가, 이 책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과 정반대를 향하는 역사가 끝없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이다. 유럽인들은 최근까지도 이러한 괴리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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