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의 탄생과 농경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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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결과, 출산과 육아는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상당히 위험한 사건이 되었다. 갓 낳은 새끼를 먹이고, 안아서 옮기고, 체온을 유지해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분만 후 어미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처럼 출산이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사건이 된 것은 인간이 유일하다.

출산과 양육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헤쳐 나가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출산기에 다다른 여자들은 함께 모여 살기 시작한다. 그들은 서로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며 위험에 빠진 동료를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었다. 이때부터 ‘음식을 나누는 습성’은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으로 자리잡는다. 음식을 나누는 여자들의 행동은 다정함, 관대함, 협력, 이타주의라는 인류의 고귀한 정신의 근원이 된다.

섹스가 출산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많은 원시 수컷들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자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공동체를 구성했다.

오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여자들이 함께 모여 살기에 가장 적절한 수는 10명 정도라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남자도 10명 정도가 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고, 이들 역시 무리 지어 사냥에 나섰다. 실제로 이 정도 규모가 한 팀으로 나설 때 사냥성과가 가장 좋았는데, 이러한 원초적인 경험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팀은 대개 10명 내외로 조직된다.

  • 분대squad (군대의 최소병력단위): 9-13명
  • 축구: 11명
  • 야구: 9명
  • 대법관: 9명(미국)-14명(한국)
  • 기업의 이사회의 구성원(평균): 9명(소기업)-12명(대기업)

여자 10명이 모였을 때, 이들이 낳아 키우는 아이의 수는 3-40명 정도 된다. 여기에 청소년기 아이들과 노인들까지 포함하면 80명에서 100명 정도가 된다. 결국 100명 정도의 인원이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수렵채집부족을 이룬다.

여자 10명 + 남자 10명 + 아이 40명 + 청소년/노인 40명 = 부족 100명

부족원들끼리는 상대방의 기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서로 친숙해졌다. 낯선 이들과의 접촉은 비교적 드물었다. 물론 사회적 관습에 따라 다른 부족과 배우자를 주고받기도 했지만(族外婚) 그럼에도 부족은 끈끈한 단합을 유지했다. 채집/양육자와 사냥/도살자가 모여사는 ‘부족’이라는 집단형태는 인간이 생존하는 데 매우 성공적인 전형이 되었고, 299만년을 거쳐 내려오는 동안 부족이라는 생활단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러던 중 1만년 전, 누군가 먹고 남긴 열매의 씨앗이 떨어진 곳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계속해서 곡식이 자란다는 것을 발견한다. 또한 몇몇 동물은 울타리를 쳐서 사육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인간이 먹다 남긴 음식을 찾아 인간 주변을 배회하는 개, 고양이 같은 동물을 길들일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한다.

농경의 시작

농경은 인류의 삶을 바꾼 놀라운 혁신이었다. 299만년 동안 이어오던 수렵채집문화는 1만년 전 새롭게 등장한 농경문화와 접촉하면서 대부분 사라진다. 100명 정도 단위로 떠돌던 부족집단도 해체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짓는 대규모사회가 출현한다.

고된 노동의 시작: 이 지겨운 일을 해야 하다니…

씨를 뿌리고 결실을 기다리는 일, 가축의 번식을 장려하는 일은 사냥하고 도살하는 일보다는 수태하고 임신하고 출산하는 일에 가까웠다. 여성적 원리가 사회의 기본원리가 된 것이다. 또한 모든 작물을 내어주는 땅은 자연스럽게 생명을 출산하는 어머니에 비유되었다.

어머니대지의 탄생

수메르의 어머니대지 여신 에레슈키갈 Ereshkigal (Queen of Underworld). 바빌로니아의 조각.

농경과 축산의 규모가 커지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닥친다. 그것은 바로 홍수, 가뭄, 해충, 전염병과 같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변화였다. 이 때문에 어머니대지 여신을 달래는 것은 초기농경민들의 주요관심사가 된다. 여신을 섬기는 것은 남녀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한편, 농경사회로 바뀌면서 사냥의 중요성이 추락하자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줄어들었다. 고작 곡식을 뜯어먹거나 가축을 잡아먹기 위해 달려드는 야생동물을 쫓아버리는 일이 사냥과 비슷한 일의 전부였다. 농사는 사냥만큼 아드레날린을 펌프질하는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일이 아니었다.

299만년 동안 사냥을 하면서 마음껏 발휘하던 사냥/도살의 본성을 남자들은 농경사회에서 충족시킬 수 없었다. 유희를 위한 사냥, 담력테스트, 희생제의 등 몇몇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신선한 고기와 골수에 굶주린 사냥꾼의 본성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분출되지 못한 남자들의 아드레날린은 독처럼 쌓여갔다.

결국 남자들은 내면에 쌓인 독—공격성, 호전성, 폭력성—을 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것은 바로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었다.

살육과 전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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