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신화 만들기

written by

Photo of author
Toco Toucan

부족의 역사를 기록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을 때 당신은 무엇부터 쓰기 시작하겠는가? 당연히 자신의 부족이 다른 부족과 구분되기 시작한 결정적인 사건부터 이야기할 것이다. 유대인의 경우 이러한 결정적인 사건은 ‘10계명’이라는 율법에 순응하기 시작한 순간이다. 당연히 율법이 성립되는 과정을 더욱 극적으로 꾸미고, 또한 율법에 기반하여 자신들의 문화적 독자성이 어떻게 구축되어왔는지 좀더 과장하여 서술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역사를 진술하다보면 자신들의 역사를 좀더 빛나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럴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창세신화’다. 자신의 부족이 주인공이 되는 창세신화를 꾸며내는 것이다.

결국 세상의 모든 창세신화는 역사적인 기록이 어느 정도 완성된 다음에 만들어져 맨 앞에 끼워넣어진다. 실제로 토라 맨 앞에 등장하는 창세기는 바빌론유수 시절 또는 그 이후 사제계급이 만들어서 끼워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상의 무수한 창조신화, 단군신화, 예수의 탄생, 모두 나중에 만들어서 끼워넣어진 허구.

그렇다면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아담과 이브를 만든 이야기는 순수한 창작물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바리새인들이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 당시 세계문화의 중심이었던 바빌론에서 경험한 선진적인 종교의 신화들을 가져다가 자신들의 문화에 맞게 각색한 것이다.

구약 속에 담긴 하나님의 모습

제호비스트Jehovist의 하나님

구약의 기록에 따르면 이집트의 왕자로 자란 모세는 체격도 좋고 힘이 셌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말을 더듬는 것과 성격이 다소 폭력적이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세는 야훼에게 자신을 스스로 이렇게 소개한다.

주여, 죄송합니다. 저는 도무지 말재간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그제도 그러했고 당신께서 종에게 말씀하신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워낙 입이 둔하고 혀가 굳은 사람입니다. (탈출기 4:10)

이집트의 이 젊은 왕자는 한 감독관이 히브리노예를 때리는 것을 보고 멈추라고 명령했는데, 감독관이 이에 반발하자 싸움이 벌어졌다. 모세는 싸우다가 감독을 죽였고, 이에 문책을 당할 것이 무서워 멀리 미디안땅으로 도망친다.

이집트에서 미디안까지 400km 정도 거리.

미디안 마을에 들어간 모세는 물을 마시러 우물에 갔다가 몇몇 남자들이 물을 긷는 여자들에게 치근덕대는 장면을 목격한다. 싸움판이 벌어졌고 모세는 청년들을 묵사발낸다. 이 소식은 곧 이 마을의 고위성직자 이쓰로에게까지 알려졌고, 그는 이 이방인의 용기를 높이 사 자신의 딸 치포라와 결혼시킨다.

Moses and Zipporah(파란 옷), The Daughters of Jethro(모세와 이쓰로의 딸 치포라), Théophile Hamel, ca 1850

모세는 이곳에서 양떼를 치고 농사를 지으며 장인어른을 도우며 살았는데, 장인의 일이란 마을사람들이 섬기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미디안 사람들이 섬기는 신은 바로 난폭한 화산신 ‘야베’였다.

Yahveh를 묘사한 현대의 작품. 화산신답게 Yahveh는 대량살육을 좋아하는 전쟁신이다.

그렇게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모세는 어느날 초자연적인 광경을 목격한다. 산비탈 위의 관목에 불이 붙었는데, 불꽃만 일어날 뿐 나무는 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불꽃에서 “이집트로 돌아가 동족을 해방시키라”는 천둥같은 목소리를 듣는데, 그것은 바로 ‘야베’의 목소리였다.

Burning Bush

YHWH – Yahweh – 야훼 – Yahveh – 야베 – Jehovah- 여호와 고대 히브리어 알파벳은 자음만 표기하기 때문에 모음은 추정해서 읽어야 한다. 야훼 역시 고대문헌에는 YHWH라고만 표기 되어 있다. W는 V로 발음하기도 하여, 야베와 야훼는 같은 신을 지칭한다.

화산신 야베는 실제로 이 당시 유대지역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는 신이었다. 기원전 10세기 이스라엘왕국의 3번째 왕 솔로몬이 ‘예루살렘 신전’을 지은 것도 야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것이었다.

야훼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솔로몬. James Tissot c. 1896–1902

야훼는 구약에서 자신을 어떠한 형상으로도 만들지 말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유대인들은 야훼를 다양하게 형상화했다.

기원전 4세기 페르시아제국이 통치하던 시기에 유대지역에서 만들어진 동전. 날개와 바퀴가 달린 의자, 손 위의 까마귀는 ‘태양의 왕좌’를 상징한다. 뒤에 화산도 보인다. 야훼를 형상화한 것이다.
기원전 1~2세기 야훼를 묘사한 아뮬렛. 사람 몸에 뱀으로 된 두 다리와 닭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무기와 방패를 들고 있다. 이는 야훼가 전쟁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형상은 이후 영지주의 기독교의 상징으로 사용된다.

구약에서 야훼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난 뒤,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야훼를 Adonai(아도나이)라고 부른다. Adonai는 Adon(Lord)+ai(my)가 결합된 단어로 ‘우리 주’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Adon은 당시 이집트에서 매우 유명한 신이었다. 바로 아크나톤이 형상없는 유일신이라고 선언한 Aton이다. (지난주 글 참조)

인류역사상 최초의 유일신이자 형상이 없는 신 아톤 Aton (동그란 태양으로 그려져있다).

하지만 아크나톤이 죽고난 뒤 그의 종교개혁은 실패로 끝났고 이집트는 곧바로 다신체제로 돌아간다.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10계를 받고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엑소더스 신화는 어쩌면 이집트에서 쫓겨난 유일신 아톤신앙이 유대지역으로 전파된 사건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엘로이스트Elohist의 하나님

엘로이스트는 제호비스트보다 최소 100년, 최대 500년 이후 구약을 집필하고 수정하는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들과 같은 말을 썼을 뿐만 아니라, 문화도 공유했던 페니키아인들이 주로 섬기던 신 ‘엘’을 주신으로 삼하고자 하였다.

El과 그의 부인 Asherah. 구약에서 El(엘)은 Elohim(엘로힘)으로도 표기된다. Elohim은 영어로 God, 한국어로 ‘하느님/하나님’으로 번역된다.
후대 페니키아의 최고신 바알Baal과 그의 부인 아스타르테 Astarte. (구약에는 ‘바알’, ‘아스다롯’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엘로이스트들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는 그의 아내 아셰라의 존재였다. 인류의 자연스러운 관념에 따르면 세상에는 다양한 신이 존재하며, 신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남신과 여신이 짝을 이룬다. 그리고 대부분 남신보다 여신의 힘이 훨씬 강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엘을 유일신으로 가져오면서 아셰라의 존재를 지워버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한국어성경에서는 ‘아세라’라고 표기된다)

그들의 제단을 허물고 석상들을 부수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리고 우상들을 불살라라. (신명기 7:5)

너희가 쌓은 하느님 야훼의 제단 옆에 무슨 나무로든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세우면 안 된다. (신명기 16:21)

그는 야훼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살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서낭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유대에서 쓸어 없애버렸다. (역대기하 17:6)

아합은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다. 그는 선대의 어느 이스라엘 왕보다도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의 속을 썩였다. (열왕기상 16:33)

그들은 하느님 야훼의 성전을 찾지 아니하고 아세라 목상과 돌 우상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유대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다. (역대기하 34:18)

하지만 다신계에서 가져온 신을 단일한 유일신으로 만드는 작업은 그다지 치밀하지 못하여 성경 곳곳에서 기이한 흔적을 남기고 만다. 몇 가지 흔적을 살펴보자.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는 모든걸 삼키는 불길이요, 질투하는 신이시다. (신명기 4:24)

이 대목에서는 우선 야훼가 화산신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야훼 스스로 누군가를 질투한다고 말한다. 유일신이라면 과연 누구를 질투할까?

또한 아담과 이브가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깨닫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이 사람이 우리들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나니. (창세기 3:22)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to know good and evil.

자신을 가리키면서 ‘나’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고 부른다. 누가 곁에 있었을까? 그것은 다름아닌 그의 아내이자 위대한 어머니여신 ‘아세라’일 것이다.

오늘날 부활절을 축하하는 Easter Egg

I ·sh ·ta·r

she· ·rah

sh ·to·reth

s ·te·r

바빌론(수메르의 Inanna)

가나안 (성경에는 아세라)

가나안 (성경에는 아스다롯)

에스테르 (현대의 부활절)

구약은 인류의 보편적인 신앙형태라 할 수 있는 ‘다신’체제를 깨고 유일신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각색하고 꾸며낸 결과물이다. 이 모든 작업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부족의 단합을 일궈내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으나, 그 결과는 고대의 강력한 여신들의 권위를 꺾고 절대적인 아버지 남신의 세상을 창조해내는 것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이 작업을 알파벳이라는 강력한 도구에 의존하여 수행한 덕분에 이후 2000년 동안 인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운명을 바꾸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댓글 남기기

Crescendo+Concerto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