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남북전쟁이 끝난 뒤 미국정부는 본격적으로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기저기 주립대학들이 새로 설립됩니다. 이 대학들은 처음에 농업, 공업, 광업에 특화된 대학으로 출발했지만 서서히 종합대학으로 발전했죠.
이런 상황에서 미국 최초의 대학이자 최고의 대학 하버드는 후발 대학들과 격차를 더 벌리고 차별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하버드대학은 대학신입생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수재들을 독점하겠다는 생각에 1874년 작문을 입학시험에 추가합니다.
문제는 하버드가 기대했던 것보다 학생들의 작문실력이 너무나도 형편없었다는 것입니다. 표현의 일관성, 전개방식의 정합성, 주장의 타당성 같은 고차원적인 요인은 따질 겨를조차 없을 만큼 스펠링, 구두점, 단어선택, 문법 등 기초적인 오류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결국, 작문시험은 탁월한 학생을 선발하는 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원래 세웠던 평가기준을 한참 하향조정하여 신입생을 선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결국 외부에 알려졌고, 학생들의 형편없는 글쓰기 실력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합니다. 하버드대학은 당연히 이러한 문제가 고등학교의 부실교육 때문에 초래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다음해 교과과정 개편을 합니다. 이때 새로 도입된 것이 바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 프레시맨잉글리시라는 작문수업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학 1학년 때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대학국어, 대학영어의 시초입니다.
하버드대학이 커리큘럼을 개편하자 다른 대학들도 모두 따라서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작문수업을 개설합니다. 하지만 작문수업이라는 것이 그냥 수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잖아요? 학생들의 과제를 일일이 읽어보고 평가해야 할 뿐만 아니라 피드백도 주어야 합니다.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죠. 더욱이 이 작문수업은 전공수업처럼 소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입생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작문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들과 강사들은 지옥 같은 노동강도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예컨대1892년 하버드대학에서는 교수 한 명이 신입생 170명을 상대로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매주 855편에 달하는 작문과제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주고 성적을 매겨야 했습니다. 1894년 미시간대학에서는, 2000명 수강생이 제출하는 작문과제를 교수 한 명과 조교 네 명이 처리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양의 글을 읽고 평가하고 첨삭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죠. 결국 작문교육은 스펠링, 구두점, 어법과 같은 기계적인 문법교육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복잡하고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음미해야 하는 고차원적인 글쓰기는 강의실 밖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작문교육은 결국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한다는 몇 가지 그럴듯한 처방을 제시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세 가지 덕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Concision 간결성
- Clarity 명확성
- Precision 정밀성
언뜻 보기에 그럴듯한 덕목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이것들이 실제로 좋은 글을 분석하여 발견해낸 덕목이 아니라, 관념적인 구호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나온 책이 바로 코넬대학 교수 윌리엄 스트렁크가 1918년 처음 출간한 스타일의 요소Elements of Style입니다. 몇 가지 짤막한 글쓰기 규칙을 모아놓은 이 소책자는 글쓰기의 경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떠받들고 있지만, 여전히 현실과 괴리가 있는 글쓰기 선언문 정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글쓰기교육은 별다른 반성없이 계속되었고, 이는 1950년대 들어오면서 더욱 확대됩니다. 컬럼비아대학 가독성연구소를 이끌던 루돌프 플레쉬라는 사람이 짧고 간결한 글의 과학적 우수성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때 그가 주창한 개념이 바로 플레인잉글리쉬무브먼트, 평이한 글쓰기 운동입니다.
화려하고 유식한 단어보다는 평이한 단어를 써야 하며, 수동태가 아닌 능동태를 사용해야 하며, 가장 좋은 영어 문장은 17개 미만의 단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플레쉬의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주장은 마치 견고한 과학공식처럼 포장되어 퍼져나갔습니다. 자신이 고안해낸 정교한 공식을 적용하여 다양한 신문기사를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면서 일약 사회적 유명인사로 급부상하였죠.
이러한 평이한 글쓰기 열풍은 국경을 넘어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문화권까지 퍼져나갔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영향을 받아 문장은 무조건 짧게 써야 한다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죠.
하지만 짧고 간결하게 써야 한다는 주장에는 앞에서 말했듯이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평이한 글쓰기에서 내세우는 글쓰기 규칙들은 실제 글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찾아낸 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글쓰기 규칙들은 순수한 원리주의자들의 개인적 취향과 착각과 만용을 처방적, 규범적,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단순한 것을 선호하는 인간의 타성과 복잡하고 정교한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불안을 자극하여 쌓아올린 허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실제로 평이한 글쓰기 주장과 현실 사이에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플레인잉글리쉬에 대한 관심이 한창 뜨거웠던 1959년 뉴요커의 편집자이자 작가인 EB화이트가 윌리엄 스트렁크의 스타일의 요소에 서문과 해설을 추가하여 다시 출간합니다. 이 책은 나오자 마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며, 지금까지도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죠. 그런데 문제는, 이 책에 대한 찬사로 가득 찬 EB화이트의 글은 정작 이 책 본문에 담겨있는 스트렁크가 주장하는 글쓰기규칙에 거의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장을 짧게 써야 한다는 주장을 매우 긴 문장으로 말하면서, 그 뻔한 모순에는 눈을 감고 글을 쉽게 써야 한다는 주문만 아무 비판없이 되뇌고 있는 것입니다.
1965년 시카고대학 영문학과 조교수로 부임한 조셉 윌리엄스는 고대그리스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글쓰기, 문법, 스타일, 수사학의 역사와 관습을 탐구하는 데 매진합니다. 그는 평이한 글쓰기에서 주장하는 다양한 규칙들은 글쓰기가 아닌 문법에 적합한 것이며, 글쓰기는 문법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원리가 작동하는 영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그는 1989년 글쓰기 강의를 시작하였고, 강의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펴냈는데, 그것이 바로 스타일입니다. 윌리엄 스트렁크의 스타일의 요소의 한계를 뛰어넘는 진정한 스타일이 비로소 탄생한 것이죠. 그리고 2000년에는 스타일을 바탕으로 글의 구성을 짜는 법에 대해 설명한 책 논증의 탄생을 발표합니다. 스타일은 구체적으로 쉽게 읽히는 문장, 좋은 문장을 쓰는 법을 설명하는 책이고, 논증의 탄생은 주장을 제시하고 이를 뒷받침하고 독자를 설득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방법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 두 책은 출간 이래 시대의 변화에 맞게 계속 개정되어오고 있으며, 미국의 무수한 대학들이 글쓰기 기본교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