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이 어려운 이유

흔히 우리는 ‘명료한 사고에서 명료한 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쓴 글이 명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글을 썼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읽고 무슨 말이냐고 묻는 상황은 참으로 난감하다.

물론 사적인 메모나 편지를 쓸 때는 글 쓰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공적인 보고서나 논문 같은 글을 써야 할 때 우리는 이러한 무기력함을 자주 경험한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글로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머리속에서 떠올리는 사고가 ‘글’이라는 매개체로 곧바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 머릿속 사고는 ‘글’보다는 ‘말’과 잘 호환된다. 다시 말해 ‘생각’은 ‘소리’를 매개로 하는 ‘말’로는 쉽게 전환되지만 ‘문자’를 매개로 하는 ‘글’로는 쉽게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자를 읽거나 쓰는 작업에는 반드시 소리가 중간에서 코드를 번역해주는 작업이 개입해야 한다.

말을 할 때에는 생각을 떠올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더라도, 생각과 말이 실시간으로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조율하여 메시지를 완성한다. 하지만 글을 쓸 때에는 생각을 떠올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기 쉽고, 그것은 넘을 수 없는 간극처럼 점점 벌어지고, 결국 절망적인 분열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1976년 출간된 월터 옹Walter Ong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라는 책에서 우리 생각은 구술언어적 속성을 띠며, 이것은 문자언어 전통과 크게 대립된다는 통찰을 설득력있게 주장한다. 실제로 우리의 사고를 매개하는 마음속 언어에는 ‘소리’라는 물리적 특성이 작동한다는 사실이 이후 문화연구와 실험심리학를 통해 입증되었다.

“생각과 글쓰기 사이에 놓여있는 비연속성”의 발견은 ‘글’이라는 매개체를 읽고 쓰는 행위가 어려운 이유를 설명해준다. 결국 우리가 글을 읽는 것은 문자언어를 구술언어로 번역하여 머릿속에 입력하고,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을 구술언어로 옮긴 뒤 그것을 문자언어로 번역하는 고단한 노동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통찰은 오랫동안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글쓰기에 대한 허구적인 관념을 깨뜨린다. 예컨대 “글쓰기는 타고나는 천재적인 재능이나 열정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열정의 수사학(또는 의지의 수사학)’과, 이와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몇 가지 규칙, 문법, 기술만 익히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기계적 작문론’은 오랜 시간 문예수업을 강력하게 지배해왔다.

상극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문예이론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의지, 낭만, 재능을 글쓰기의 최고의 선善이라고 평가하는 ‘열정의 수사학’은, 평범한 언어에 집착하는 보통사람들의 글쓰기를 ‘잃어버린 말들의 풍경’으로 전락시킨다. 그리고 ‘글쓰기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이들은 몇 가지 기술과 요령만 습득하여 평범한 글을 쓰는 방법을 익히면 된다는 ‘기계적 작문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기계적 글쓰기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우리의 의식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글쓰기는 결국 존재의 결핍을 입증하고 극대화하는 역할만 하고 만다. 아무리 고차원적인 이해와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기계적 작문론은 그것을 담아낼 수단을 제공하지 못한다.

Toco Toucan 제작

I am the website manager of Crescendo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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