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rwood Anderson

미국의 소설가. 1876년 9월 13일 – 1941년 3월 8일. 개인적이고 자기고백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셔우드 앤더슨은 미국의 소설가로 오하이오 캠던에서 마구harness 직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그는 젊은 시절 클리블랜드와 엘리리아에서 카피라이터와 사업가로 성공하였다. 하지만 1912년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사업과 가족을 포기하고 시카고로 이주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19년 출간한 첫 단편선 《와인즈버그 오하이오Winesburg, Ohio》가 대단한 호평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문단에 입문한 뒤 1920년대 단편집, 소설, 회고록, 에세이, 시 등을 발표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이후로도 《가난한 백인 Poor White (1920)》, 《검은 웃음소리 Dark Laughter (1925)》, 《욕망 너머 Beyond Desire (1932)》를 비롯한 소설을 발표하였으며 시와 평론도 꾸준히 발표하였다. 왕성한 작품활동을 통해 1920년대를 대표하는 문학가이자 오늘날 현대 미국소설의 원조로 평가받고 있다. 윌리엄 포크너를 작가로 데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셔우드 앤더슨은 거트루드 스타인의 영향을 받았으며 헤밍웨이, 울프, 사로얀, 콜드웰 등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기계문명이 가져다 준 인간의 욕구불만과 고독을 묘사하는 데 프로이트적 심리분석을 접목하려고 노력했으나, 명석한 문학적 이상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포크너나 헤밍웨이에게 평가절하되기도 하였다.

초기생애
셔우드 버턴 앤더슨Sherwood Berton Anderson은 1876년 9월 13일, 인구가 65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오하이오의 농촌마을 캠던Camden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앤더슨의 아버지 어윈 매클레인 앤더슨Irwin McLain Anderson은 연합군 출신의 마구상이었다. 캠던 시절 이웃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능력 있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가족은 재정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으나, 앤더슨이 첫돌이 되기 전 마을을 떠났다.
그들은 북쪽에 있는 인디펜던스Independence(현, 버틀러Butler)라는 작은 마을에 잠시 머무르다 칼레도니아Caledonia에 정착했다. 앤더슨은 이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이 당시 기억을 바탕으로 반자전적인 소설 《타르 Tar: A Midwest Childhood (1926)》을 집필하였다. 칼레도니아에서 그의 아버지는 음주를 과하게 하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에 빠진 가족은 그곳을 떠나야 했다.
1884년 앤더슨 가족은 마침내 클라이드Cylde에 정착하였다. 이곳은 당시 서부개척민들의 거주지로, 이곳에서 아버지는 마구를 만드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일거리는 금방 끊겼고, 간판장이나 도배공 같은 일용직을 전전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수입이 턱없이 부족했다. 생계는 어머니가 남의 빨래를 대신 해주며 버는 돈으로 겨우 유지했으며, 앤더슨 역시 어릴적부터 생계에 도움이 될 만한 일거리를 찾아나서야 했다.
앤더슨은 훌륭한 학생이었지만,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학교에 결석하는 일이 작아졌다. 결국 고등학교를 입학한 지 9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14살). 클라이드에서 신문배달, 심부름, 소몰이, 마구간관리, 인쇄공장 견습, 아버지의 간판제작 조수, 물을 나르는 일, 자전거 조립 등 온갖 일을 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물건을 파는 일이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광고업계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앤더슨은 어릴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그의 집에는 책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학교도서관과 지역예술가 존 티치노John Tichenor의 집에서 책을 빌려서 읽었다.
18살이 되던 1895년, 그의 가족은 결국 파국을 맞는다. 그의 형 칼 Karl은 2년 전 시카고로 떠난 상태였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 몇 주씩 들어오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 하비-예터 마구간 Harvey & Yetter’s livery stable에서 기숙하며 관리인으로 일하기도 했으며,(이 마구간은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 자전거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에 등장하는 헬렌 화이트 Helen White의 모델로 추정되는 매력적인 여자 베르타 베인즈 Bertha Baynes와도 교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5월 어머니가 결핵으로 쓰러져 갑자기 사망하고 만다.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앤더슨은 클라이드를 떠난다. 여러 소도시의 공장을 전전하다가 1896년 말 (또는 1897년 봄/여름) 그는 시카고에 정착한다. 그해 이후 앤더슨 형제들은 아버지를 외면했고, 아버지는 외로이 떠돌다 20년 뒤(1919년) 사망한다.
시카고 생활과 미국-스페인전쟁
당시 클라이드에서 시카고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앤더슨도 새로운 곳에서 자리 잡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앤더슨은 형 칼이 묵는 하숙집에 거처를 정하고, 냉동창고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897년 말 앤더슨은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얻어 누나와 두 남동생과 함께 지내기 시작했다. 당시 앤더슨은 하루 10시간 일해서 2 달러를 벌었는데, 부족한 생활비는 형 칼의 도움을 받았다.
앤더슨은 루이스대학Lewis Institute, (현 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IIT)) 야간강좌에 등록하여 학업을 다시 이어갔다. ‘신新상업수학’이라는 수업에서는 2등을 하기도 했으나 무엇보다도 이곳에서 로버트 브라우닝, 알프레드 테니슨, 월트 휘트먼 등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미국-스페인 전쟁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서 시카고의 삶도 접어야 했다.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앤더슨은 새 정장 한 벌을 구입하여 차려입고 클라이드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입대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오는 남자들로 마을은 북적이고 있었다.
입대 후 몇 달간 남부지역의 여러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은 앤더슨은 1899년 초 쿠바로 파병을 갔으나 네 달 만에 전쟁은 끝이 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다. 앤더슨은 전우들 사이에서 서부개척 소설, 역사적 로맨스를 늘 읽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또한 여자를 꾀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앤더슨은 클라이드에 몇 달 동안 머물며 농사를 지었다. 다시 학교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한 그는 1899년 9월, 형과 누나가 있는 스프링필드Springfield로 가서 23살 나이에 위튼버그대학Wittenberg University 안에 있는 대학입학예비학교(고등학교과정)에 등록한다. 1899년부터 1990년까지, 세 학기 동안 앤더슨은 거의 모든 과목에서 최고 성적을 받았으며, 토론클럽과 같은 과외활동에도 참여하였다. 1900년 봄, 예비학교를 졸업할 때는 졸업생 대표연설을 할 학생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시오니즘에 관한 연설을 하였다.
사업과 결혼
스프링필드에서는 하숙집에서 일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이곳에는 사업가, 교육자 등 창의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여럿 머물렀으며, 이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교사 트리엘나 화이트Trillena White와 사업가 해리 사이몬Harry Simmons은 그의 작품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다. 앤더슨에 따르면, 화이트는 ‘좋은 문학을 처음으로 만나게 해준 사람’이다. 그녀는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에서 교사 케이트 스위프트Kate Swift를 비롯하여 그의 작품 속 여러 인물의 모델이 되었다. 광고회사 매스트-크로웰-커크패트릭Mast, Crowell, and Kirkpatrick에서 관리자로 일하던 해리 사이몬은 앤더슨의 졸업연설에 감동을 받아, 앤더슨에게 자신의 회사 시카고 사무소의 광고담당자 자리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1990년 여름, 앤더슨은 어엿한 광고회사 직원이 되어 자신의 형제자매들이 대부분 살고 있던 시카고로 돌아갔다. 열심히 일했지만 상사와의 불화가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진 앤더슨은 1901년 중반, 스프링필드 하숙집에서 알게 된 또 다른 인물 마코 매로우Marco Marrow의 소개로 또 다른 광고회사 프랭크화이트Frank B. White Advertising로 자리를 옮긴다.
이곳에서 1906년까지 앤더슨은 광고를 판매하고, 농기계 제조사들을 위한 광고문구를 작성하고, 《농업광고 Agricultural Advertising》라는 전문잡지에 실을 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했다. 1902년 2월, 이 잡지를 통해 “농부, 옷을 입다 The Farmer Wears Clothes“라는 글을 발표한 후 앤더슨은 주목받기 시작하여 이후 상당히 많을 글을 썼는데, 월간지에 29개의 기사와 에세이를 썼고, 문학잡지에도 두 개의 글을 실었다. 앤더슨은 이 시기에 잡지에 실을 칼럼을 매달 작성하면서 캐릭터 중심으로 글을 쓰는 방법에 익숙해졌고, 이러한 기법은 그의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으로 자리잡는다.

당시 앤더슨의 업무 중 하나는 잠재고객을 만나 계약을 따내는 것이었다. 1903년 5월, 앤더슨은 출장 가는 길에 클라이드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의 집에 들렀다가, 부유한 사업가의 딸 코넬리아 프렛 레인을 처음 만난다. 그 둘은 1년 후 결혼하여 시카고 남쪽에 정착하였고 1906년에는 클리블랜드Cleveland로 이주하여 유나이티드팩토리 United Factories라는 우편통신판매회사를 설립한다.
앤더슨은 영업관리자 역할을 하며 열심히 일을 했고, 코넬리아 역시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한동안은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가정생활도 행복하게 유지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나이티드팩토리와 거래하던 한 제조사가 결함이 있는 달걀 인큐베이터를 대량으로 납품하면서 앤더슨의 가정생활은 고난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분노에 찬 고객들의 편지들이 쏟아져 들어왔으며, 그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쓰면서 동시에 회사일과 가정생활을 해나가던 그는 결국 1907년 여름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결국 회사문을 닫았다.
실패로 인한 좌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907년 여름 앤더슨은 엘리리아Elyria로 이주하여 철길 옆에서 ‘루프픽스Roof-Fix‘라는 페인트를 우편통신으로 판매하는 앤더슨매뉴팩처링Anderson Manufacturing Co.을 다시 설립한다. 초기에는 사업과 가정생활이 모두 순탄하여, 바쁜 생활 속에서 아이를 둘이나 더 낳아 총 세 자녀를 두었다. 사업은 발전하여 작은 기업들을 계속 사들였고, 앤더슨페인트Anderson Paint Company로 회사이름을 바꾸고 생산라인을 계속 확장해 나갔다. 그러던 중, 1911년 후반 회사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고자 어메리칸머천드American Merchants Company라는 투자회사와 합병한다.


신경쇠약
사업이 절정을 향해 올라서는 것처럼 보이던 순간, 스트레스는 더욱 극심해졌고, 결국 그의 모든 성취는 한 순간 물거품처럼 꺼져버린다.
1912년 11월 28일, 앤더슨은 다소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우편물들을 뜯어 훑어보았지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남길 메모를 쓰고나더니 “발이 축축한 것 같아. 계속 그러네.”라는 말을 중얼거리다 사무실을 나갔다. 4일이 지난 12월 1일 일요일,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이는 모습으로 클리블랜드의 한 약국에 나타나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며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횡설수설하는 앤더슨의 말에 약사는 앤더슨의 전화번호수첩에서 엘리리아 상공회의소 회원인 에드윈 박스터Edwin Baxter의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전화를 건다. 박스터는 곧바로 앤더슨을 병원으로 입원을 시키고 앤더슨의 아내에게 연락했다. 아내가 병원에 왔을 때 앤더슨은 아내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했다.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 그의 머릿속은 이미 자신이 겪은 사고를 재해석하는 일로 가득차 있었다. 몇몇 지역신문들은 그가 보인 기행을 과로로 인한 신경쇠약이라고 보도했으나, 12월 6일자 《이브닝텔레그램Evening Telegram》이라는 신문은 “셔우드 앤더슨은 가수면 상태에서 회복하자마자… 유목민처럼 전국을 떠돌아다닌 경험을 책으로 써낼 계획이다”라고 미래를 예측하는 듯한 오보를 내기도 했다.
앤더슨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1942년 출간된 회고록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떠나고 싶었다. 사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나는 아파야겠다. 교묘하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사람들이 나를 약간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나를 용서해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11월 28일 사무실을 나서기 전, 멀쩡한 상태에서 자신이 회사와 가정의 굴레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의도적인 행동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그가 남긴 글을 보면 혼란에 빠지거나 일관성이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빈번했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글을 썼다고 회고록에 썼지만, 실제로는 그의 아내와 비서, 심지어 거래처 사람들까지도 그가 밤낮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여행 중 작성한 메모나 아내에게 쓴 편지를 보면, 실제로 약간의 ‘유사기억’증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흘 간 사라졌다 나타났을 때 그는 기억상실, 자아상실, 신경쇠약 등 여러 가지 진단을 받았으나, 오늘날 진단기준으로 보자면 해리성 장애Dissociative Disorder에 가까울 것으로 여겨진다. 앤더슨은 나중에 자신의 경험을 ‘물질적 실존로부터 탈출escaping from his materialistic existence’이라고 설명했는데, 이후 많은 젊은 남성작가들이 그의 행동을 동경하며 영감을 받기도 했다.
앤더슨과 코넬리아는 시카고로 다시 이주한 뒤, 공식적으로 이혼했다. 앤더슨은 자신의 정부였던 조각가 테네시 클라핀 미첼과 재혼한다.



작품활동
앤더슨은 첫 소설 《허풍쟁이 맥퍼슨의 아들Windy McPherson’s Son 》을 1916년에 출간한다. 이 소설과 두번째 소설 《행진하는 사람들Marching Men (1917)》은 ‘연습소설’로 분류되는데, 이는 《와인즈버그 오하이오(1919)》 이후 작품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앤더슨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서로 연계된 이야기들로 구성된 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 단편집에 실린 첫 작품 “손 Hands“이야말로 그가 처음으로 쓴 ‘진짜’ 소설이라고 말한다.
줄거리나 상황을 강조하는 대신에, 앤더슨은 단순하고, 정확하고, 비감상적인 스타일을 사용하여 인물이 삶을 통해 느끼는 좌절감, 외로움, 기다림을 드러낸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중서부 작은 마을의 고독한 생활과 그들 자신의 한계로 인해 성장을 멈춘다.
—다니엘 마크 포겔 Daniel Mark Fogel, “Sherwood Anderson”, 《The American Novel》, PBS, 2007, accessed 2 June 2013
또한 앤더슨은 프로이드 정신분석을 포함하여 심리학 분야를 소설에 도입한 최초의 미국 작가다.
단편소설이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앤더슨은 규모가 큰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장편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1920년 발표한 장편소설 《가난한 백인》은 꽤 성공을 거두었다. 1923년 발표한 《여러 번의 결혼》은 자유로운 성적 욕망을 다루었는데, 이 주제는 이후 《검은 웃음소리》를 비롯한 다른 작품에서도 이어졌다.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는 앤더슨의 작품 중에서 《여러 번의 결혼》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1924년 초, 앤더슨과 프롤은 뉴올리언즈로 이주하였다. 한동안 그들은 윌리암 포크너William Faulkner,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 에드먼드 윌슨Edmund Wilson 등 앤더슨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즐겼다. 평론가들은 앤더슨은 ‘자신의 작품보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다음 세대 작가들을 통해 미국문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후기 작품
앤더슨은 꾸준히 신문에 칼럼을 기고했다. 1935년에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던 “문샤인 밀주사건The Great Moonshine Conspiracy” 재판을 취재하기 위해 신문사 특파원으로 버지니아에 파견되기도 한다.
1930년대 앤더슨은 단편집 《숲속의 죽음Death in the Wood》, 에세이 《어지러운 미국Puzzled America》, 소설 《킷 브랜든Kit Brandon: A Portrait》을 출간하였다. 1932년에는 코펜하버에게 헌정하는 소설 《욕망의 언저리Beyond Desire》를 발표했다. 이 시기 미국 문학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대체로 줄어들었지만, 가장 자주 인용되는 그의 문장들은 대개 후기 작품에 등장한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을 발표했지만 이전에 비해 작품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욕망의 언저리》를 쓰는 과정에서 앤더슨은 노동조합운동에 관심을 갖는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작품 《가진자와 못 가진자To Have and Have Not (1937)》에서 이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언급하는데, 이 소설의 등장인물 중 노스캐롤라이나 개스토니아Gastonia의 소설가가 바로 앤더슨을 모델로 삼은 것이다.
말년에는 버지니아로 이주하여 코벤하버와 농장을 운영하면서 지역신문에 기고할 칼럼을 썼다.
사망
1941년 3월 8일, 앤더슨은 남미로 크루즈여행을 하던 중 심한 복통증세를 보이다 6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평소와 달리 굉장히 불편한 복통을 며칠 동안 앓다, 결국 여행 도중 아내와 함께 크루즈에서 내려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죽음을 맞이하였다. 부검 결과, 여행가기 며칠 전 송별회에서 마티니에 담긴 이쑤시개를 꽂은 올리브를 먹었는데, 이 이쑤시개가 결장에 구멍을 내서 장내 박테리아가 복강에 감염되어 복막염을 일으킨 것이었다.
앤더슨의 시신은 미국 버지니아 라운드힐 공동묘지에 묻혔다. 묘비에는 “죽음이 아닌, 삶은 위대한 모험Life, Not Death, is the Great Adventure“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앤더슨이 말년에 살던 버지니아의 집은 1971년 미국의 역사적 시설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작품
소설
- 허풍쟁이 맥퍼슨의 아들 Windy McPherson’s Son 1916
- 행진하는 사람들 Marching Men 1917
- 가난한 백인 Poor White 1920
- 여러 번의 결혼 Many Marriages 1923
- 검은 웃음소리 Dark Laughter 1925
- 타르 Tar: A Midwest Childhood 1926
- 앨리스와 잃어버린 소설 Alice and The Lost Novel 1929
- 욕망의 언저리 Beyond Desire 1932
- 킷 브랜든 Kit Brandon: A Portrait 1936
단편집
-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Winesburg, Ohio 1919
- 달걀의 승리 The Triumph of the Egg: A Book of Impressions From American Life in Tales and Poems 1921
- 말과 사람 Horses and Men 1923
- 숲속의 죽음 Death in the Woods and Other Stories 1933
시집
-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Winesburg, Ohio 1919
- 미국중부시선 Mid-American Chants 1918
- 신약 A New Testament 1927
극본
- 와인즈버그 외 Plays, Winesburg and Others 1937
논픽션
- 이야기꾼의 이야기 A Story Teller’s Story 1924, 회고록
- 현대의 작가 The Modern Writer 1925,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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