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명확성을 넘어 탁월함으로

Lesson of Part V. Ethics

The administrator with a sense for style hates wastes; the engineer with a sense for style economizes his material; the artisan with a sense for style prefers good work. Style is the ultimate morality of mind.

스타일 감각이 있는 행정가는 낭비를 싫어하고, 스타 일 감각이 있는 엔지니어는 재료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스타일 감각이 있는 장인은 훌륭한 작품을 만 들어낸다. 스타일은 우리 마음 속 궁극의 도덕이다. —Alfred North Whitehead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떤 글을 ‘좋은’ 글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명확하고 우아하고 솔직한 글이면, 글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좋은 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진실성과 무관하게, 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 글을 좋은 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좋은’이라는 말이 윤리적으로 온전하다는 뜻인지 실용적으로 성공했다는 뜻인지 결정하기 전에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에는 스타일의 골든룰이 분명한 해법을 제시한다.

독자의 자리에 서서 내가 쓴 글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들지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는 사람은 윤리적인 저자다.

골든룰은 내 글을 읽는 독자가 누구일지, 독자의 반응은 어떨지 상상하는 것을 넘어서, 독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우리에게 부여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스타일의 실버룰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어디인지 알려준다.

글 전반에 걸쳐 독자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앞세울 필요는 없다. (자신의 이익보다 남의 이익을 우선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속이거나 왜곡하거나 숨겨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도록 글을 쓰는 것도 거짓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학계나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웬만큼 경륜을 쌓은 사람이라면, 모호한 글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들에게는 명확성, 윤리, 에토스에 관한 이 모든 이야기가 뜬구름 잡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세 페이지 분량의 글을 쓰는 것만 해도 빠듯한 상황에서 스타일까지 신경쓰는 것은 사치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과도하게 편집된 교과서를 읽는 학생들의 경우, 독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난해하게 의미를 압축해 놓은 글을 읽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글과 맞닥뜨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글을 대충 쓴다고 해도 별로 손해 볼 것도 없고 또 그렇게 쓴 글도 흔한데, 명확하게 글을 쓰는 법을 왜 힘들게 배워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글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 있다. (머지않아 우리도 곧 알게 될 사실이다.) 명확하고 우아하게 글을 쓰는 사람은 실제로 매우 적기 때문에, 그런 글을 발견했을 때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온다는 것이다. 노력은 분명코, 보상으로 돌아온다.

또한 문장이나 단락을 우아하게 다듬는 일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이는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서나 느낄 수 있는 윤리적 만족이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알아주는 사람이 있든 말든, 좋은 일을 했을 때 우리는 환희를 느낀다. 정교한 설계에 따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경제적으로 완벽한 결과물을 볼 때 우리는 심오한 만족감을 느낀다.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이것을 ‘스타일감각’이라고 규정한다. 스타일감각은 예술은 물론 어느 분야에서나 통하는 미학적 감수성이자 궁극적으로 도덕적 감수성이라고, 그는 말한다. 화이트헤드의 명확하고 우아한 문장을 음미하며 읽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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